시와 憧憬

박준,「가족의 휴일」(낭송 최광덕)

cassia 2015. 12. 22. 04:08

박준,「가족의 휴일」(낭송 최광덕)

 

 

박준, 「가족의 휴일」

 

아버지는 오전 내내
마당에서 밀린 신문을 읽었고

 

나는 방에 틀어 박혀
종로에나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날은 찌고 오후가 되자
어머니는 어디서
애호박을 가져와 썰었다

 

아버지를 따라나선
마을버스 차고지에는
내 신발처럼 닳은 물웅덩이

 

나는 기름띠로
비문(非文)을 적으며 놀다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바퀴에
고임목을 대다 말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번 주도 오후반이야” 말하던
누나 목소리 같은 낮달이
길 건너 정류장에 섰다


시_ 박준 –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남.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있음.

낭송 – 최광덕 – 배우. , 등에 출연.

출전_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음악_ 이영배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형

 

박준, 「가족의 휴일」을 배달하며


낮달처럼 조요로운 가족의 휴일이다. 가장인 아버지는 바퀴에 고임목을 대고, 장차 시인이 될 아들은 무지개 빛 기름 띠로 젖은 땅에다 이상한 글을 쓴다. 이 시간과 공간이 있던 자리를 어느 날 그리움과 애달픔과 상실이 차지할 것이다.   

      

“어머니가 노래를 시작하자 할머니가 함께 따라하신다. 엄마와 딸이 어린 소녀처럼 노래를 부른다....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더라면 아버지는 아마도 노래에 맞춰 아코디온을 연주하셨을 것이다, 나룻배처럼 몸을 흔드시면서....”

 

현재 미국의 주목받는 시인 가운데 하나인 중국계 시인 리영 리(1957- )는 무심한 풍경, 한가한 방안의 풍경을 진정어린 시어로 직조하여 가족 해체시대에 뭉클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별뜨락새벽산책 시&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