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정끝별,「처서」(낭송 황혜영)

cassia 2015. 9. 1. 21:37

정끝별,「처서」(낭송 황혜영)


 

 

정끝별, 「처서」

 

모래내 천변 오동가지에

 

맞댄 두 꽁무니를
포갠 두 날개로 가리고
사랑을 나누는 저녁 매미

 

단 하루
단 한사람
단 한번의 인생을 용서하며
제 노래에 제 귀가 타들어 가며

 

벗은 옷자락을 걸어놓은
팔월도 저문 그믐

 

멀리 북북서진의 천둥소리


시_ 정끝별- 1964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나 1988년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삼천갑자 복사빛』 등이 있음.

낭송_ 황혜영 - 배우. 연극 '타이피스트', '죽기살기', 등과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하모니' 등에 출연.
출전_ 와락 『와락』(창비)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제이
프로듀서_ 김태형


정끝별,「처서」를 배달하며

 

더위가 꺾인다는 처서가 지나면 풀도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생명 가진 것들은 그 사랑을 완결시키고 서늘한 낙과의 시간을 예비해야 한다. 짧은 태양 아래 단 한 번의 사랑을 만드는 매미! 모래내 천변 오동가지라는 구체성이 실감을 준다.

 

언젠가 시인은 봄날 모란꽃에 꽁지를 박고 하늘 한 귀퉁이를 끌어당기는 직박구리의 구도를 노래한 적도 있다. 목련 건너 세 그루 건너 흐벅진 배꽃더미의 무아(無我)로 가는 구도를 통해 간결하지만 깊고 오묘한 단 한 번의 인생과 옷자락을 노래한 시였다. 맞댄 두 꽁무니를 날개로 가린 「처서」 속으로 이번에는 북북서진의 천둥소리가 들려와 시적 긴장을 보태준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바람&별이 쉬어가는 뜨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