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송종찬,「시베리아의 들꽃」(낭송 이재훈)

cassia 2015. 8. 11. 09:01

송종찬,「시베리아의 들꽃」(낭송 이재훈)

 

 


송종찬,「시베리아의 들꽃」


누가 내게 사랑을 물어 온다면
시베리아로 달려가 반란처럼 피어난
보랏빛 엉겅퀴 한 송이 보여주리

 

벌판에 십 개월 동안 눈이 쌓이고
자작나무 숲에 안개가 덮여도
원색의 야생화는 피어난다

 

유형의 길 떠나던 임을 따르다
눈밭에 나뒹굴던 여인처럼
길가에 맨발로 피어난 양귀비

 

여름은 짧고 길은 어두어도
그대에게 가야 만 하는 먼 길
사랑은 들꽃처럼 붉어지고

 

누가 내게 사랑을 물어온다면
그냥 시베리아로 달려가
엉겅퀴 한 송이 가슴에 물들여주리


시_ 송종찬 - 1966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성장했다. 1992년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외 9편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그리운 막차』,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등이 있다.

낭송_ 이재훈 - 시인.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가 있음.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_ 김태형


송종찬, 「시베리아의 들꽃」을 배달하며

 

시베리아라는 시어는 호랑이와 횡단열차와 함께 달려온다.

 

자본론을 읽고 있는 유리창에 추운 입김이 서리고, 이념의 가죽 군화 소리가 저 멀리서 메아리처럼 들려올 것 같은 시베리아. 가장 단단한 영혼과 가장 순결한 바람소리로 소스라치게 잠든 의식을 깨우고야 말 것 같은 시베리아! 광활한 대지와 그 대지가 품은 보랏빛 이념들을 떠올려본다.

 

유형지를 따라 나선 맨발의 엉겅퀴와 양귀비! 들꽃이지만 지독한 사랑과 파멸을 동시에 품은 것 같아 슬며시 두려워지는 들꽃들이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별뜨락새벽산책 시&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