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박상순,「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6년 뒤」(낭송 박성준)

cassia 2015. 9. 15. 09:20

박상순,「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6년 뒤」(낭송 박성준)

 

 

 

박상순,「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6년 뒤」


훔친 구두를 신고
훔친 가방을 메고
소풍을 갔다

 

발등에 족쇄 같은 고리가 달린
여자 아이의 구두를 신고
어수선한 닭집 옆
주렁주렁 매달린
시장 바구니 하나를 훔쳐
소풍을 갔다

 

풀밭 위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었다
선생님 구두를 먹고
아이들은 내 찢어진 반바지와 바구니를
김밥처럼 먹으며

 

내게 말했다
구두에게 말했다
바구니에게 말했다

 

-너, 집에 가


시_ 박상순 - 1961년 태어났다. 1991년 《작가세계》로 등단했다. 1996년 현대시동인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 제51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6은 나무 7은 돌고래』,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자네트가 아픈 날』, 『Love Adagio』 등이 있다.

낭송_ 박성준 - 시인. 2009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몰아 쓴 일기』와 산문집 『소울 반띵』이 있다.

출전_ 6은 나무 7은 돌고래 『6은 나무 7은 돌고래』(민음사)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_ 김태형

 

박상순,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6년 뒤」를 배달하며

 

표현의 새로움과 기묘한 장면이 어우러져 매우 아프고 신선하다.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에서 섣불리 자본주의로 치닫는 90년대의 징후를 읽는다거나, 소풍의 장면에서 미흡한 존재의 소외를 쉽게 말해서도 안 될 것 같다. 박상순 시의 매력은 아무렇지도 않은 시어로 아무렇지도 않은 장면을 그려냄으로써 기존의 시들을 그만 고철 더미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그 행위조차 매우 조용하게 서슴없이 차갑게 해치운다는 점이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바람&별이 쉬어가는 뜨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