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심재휘, 「중국인 맹인 안마사」(낭송 장성익)

cassia 2014. 8. 18. 18:55

심재휘, 「중국인 맹인 안마사」(낭송 장성익)
 

 


심재휘, 「중국인 맹인 안마사」


상해의 변두리 시장 뒷골목에
그의 가게가 있다

 

하나뿐인 안마용 침상에는 가을비가
아픈 소리로 누워 있다

 

주렴 안쪽의 어둑한 나무 의자에 곧게 앉아
한 가닥 한 가닥
비의 상처들을 헤아리고 있는 맹인 안마사

 

곧 가을비도 그치는 저녁이 된다

 

간혹 처음 만나는 뒷골목에도
지독하도록 낯익은 풍경이 있으니

 

손으로 더듬어도 잘 만져지지 않는 것들아
눈을 감아도 자꾸만 가늘어지는 것들아

 

숨을 쉬면 결리는 나의 늑골 어디쯤에
그의 가게가 있다


시_ 심재휘 - 심재휘(1963~ )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1977년 계간지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부는』 『그늘』 등이 있다.

낭송_ 장성익 - 배우. 연극 ‘미친극’, ‘밤비 내리는 영동교’ 등에 출연.
출전_ 중국인 맹인 안마사 『중국인 맹인 안마사』(문예중앙)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형


심재휘, 「중국인 맹인 안마사」를 배달하며

 

시인은 언젠가 상해의 변두리 시장 뒷골목을 배회한 적이 있었던가요? 그러다가 맹인 안마사에게 지친 몸을 맡겼던 적이 있었던가요? 안과 밖의 경계를 는 주렴 밖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맹인 안마사는 고작 안마용 침상 하나를 놓은 가게 안 나무 의자에 곧게 앉아 바깥을 내다봅니다. 하늘에서 지면으로 늘어뜨린 가을비의 주렴 속에서 회색빛으로 가라앉은 낯선 도시 뒷골목은 처연합니다. 그것이 처연한 것은 그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의 처연함이 겹쳐진 탓이겠지요. 곧 가을비가 그친 저녁이 옵니다. 저녁의 그림자를 밟으며 곧 밤이 오겠지요. 어느새 중국인 맹인 안마사가 늑골 어디쯤에 들어와 앉습니다. 상해의 변두리 뒷골목에서 만난 맹인 안마사 그랬듯이 우리도 세상의 하염없이 쓸쓸한 풍경을 내다보는 날들이 있겠지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바람과 별이 쉬어가는 뜨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