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한다
강은교(1945~ )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껏 거기 쭈그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일몰의 새떼들, 일출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줄을 몰랐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기고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인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은 한없이 통통하다는 것을
-시집『바리연가집』 실천문학사, 2014. / 바람과 별이 쉬어가는 뜨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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