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추억에서(1)(2)(3) / 박재삼

cassia 2014. 8. 3. 04:22

       

      추억에서 (1)

       

                   박재삼

       

       

      국민학교를 나온 형이

      화월(花月)여관 심부름꾼으로 있을 때

      그 층층계 밑에

      옹송그리고 얼마를 떨고 있으면

      손님들이 먹다가 남은 음식을 싸서

      나를 향해 남몰래 던져 주었다.

      집에 가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 누이동생이

      부황에 떠서 그래도 웃으면서

      반가이 맞이했다.

      나는 맛있는 것을

      많이 많이 먹었다며

      빤한 거짓말을 꾸미고

      문득 뒷간에라도 가는 척

      뜰에 나서면

      바다 위에는 달이 떴는데

      내 눈물과 함께

      안개가 어려 있었다.

       

       
      추억에서 (2)
       

       

       

      해방된 다음해

      노산 언덕에 가서

      눈아래 무역회사 자리

      홀로 삼천포중학교 입학식을 보았다

      기부금 三천원이 없어서


      그 학교에 못 간 나는

      여기에 쫓겨 오듯 와서

      빛나는 모표와 모자와 새 교복을

      눈물 속에서 보았다

       

      그러나 저 먼 바다

      섬가에 부딪히는 물보라를

      또는 하늘하늘 뜬 작은 배가

      햇빛 속에서 길을 내며 가는 것을

      눈여겨 뚫어지게 보았다

       

      학교에 가는 대신

      이 눈물범벅을 씻고

      세상을 멋지게 훌륭하게

      헤쳐 가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오늘토록 밀려서

      내 주위에 너무 많은 것에 지쳐

      이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 어렴풋이 배웠다.

       

       

       

      눈물의 시인 박재삼은 일본에서 태어나 경상남도 삼천포에서 자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돈이 없어서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삼천포여자중학교에서 심부름을 하는 사환을 했는데 당시 이 학교 국어교사인 초정 김상옥 선생을 만났다.

       

      이때부터 시를 좋아했다. 시인은 나중에 삼천포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고려대를 나왔다.

      1953년에 시조 "강물에서"를 모윤숙 추천으로 [문예] 11월호에 발표 했고, 1955년 [현대문학]에 유치환 추천으로 "섭리"를, 서정주 추천으로 "정숙"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62년에 첫 시집 [춘향이 마음]을 낸 이래 시선집을 포함하여 열여섯 권의 시집을 세상에 냈다.

      소월-서정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고유 서정시를 고집한 시인은 미당 서정주. 청마 유치환 선생으로부터 다투어 시문을 추천받는 등 일찌감치 인정을 받았다,

       

      [현대문학], [문예춘추], [삼성출판] 등에서 일했고, 월간[바둑]의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1974년에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시인은 1997년, 지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민영 인용>

       

       

      추억에서 (3)

       

       

      진주(晋州) 장터 생어물(魚物)전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 시리게 떨던가 손 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晋州南江)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 어스름: 조금 어둑한 상태. * 은전(銀錢): 은돈, 은화. * 오누이: 오라비와 누이. 오라비는 여자가 남자 형제를 일컫는 말. 누이는 남자가 여자 형제를 일컫는 말.

      * 표현상의 특징: ① 실제 지명(진주 장터,진주 남강)과 사투리(엄매, 오명 가명)를 활용하여 정서를 구체화. ② 차가운 이미지(손 시리게 떨던 골방)가 삶의 고난을 환기하는 데 활용. ③ 의문형 진술(한이던가, 떨던가, 어떠했을꼬, 반짝이던 것인가)을 활용하여 정서(어머니의 한스러운 삶에 대한 연민)를 효과적으로 드러냄​. ④ 시어나 시구의 반복(울 엄매야 울 엄매, 손 시리게 떨던가 손 시리게 떨던가)을 통해 리듬감을 조성하고 있음. ⑤ 과거 회상을 중심으로 시상이 전개됨. ⑤ 연관성을 가진 시어(반짝이는 이미지의 시어들: 빛 발하는 눈깔들, 은전, 별밭, 달빛, 옹기)를 통해 시상 전개에 일관성을 부여하여 미적 완성도를 높임.

      * 시구의 이해: ① 해 다 진 어스름: 어머니가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무리하던 시간. ② 울 엄매: 정감 있는 호칭을 통해 유년기의 체험을 환기. ③ 별밭: 멀리 떨어진 공간. 오누이가 어머니를 기다리던 기억과 연결. ④ 진주 남강: 어머니까 느꼈을 서러움을 부각. ⑤ 신새벽: 어너니가 하루의 고된 노동을 시작하는 시간. ⑥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 슬픔을 안으로 삭이던 어머니의 깊은 한을 연상하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