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이성복, 「작은 꽃들아, 이상한 빛들아」(낭송 장석주)

cassia 2014. 6. 17. 05:08

    이성복, 「작은 꽃들아, 이상한 빛들아」(낭송 장석주)
     

     

     

    이성복, 「작은 꽃들아, 이상한 빛들아」

     

    작은 꽃들아
    얼굴을 돌리지 마라
    나는 사람을 죽였다
    죽은 꽃들아, 아무에게도
    이 말을 전하지 마라
    나는 너희처럼 땅에 붙어 살
    자리가 없어 그 자리,
    내 스스로 빼앗은 자리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작은 꽃들아, 푸른 구멍으로
    솟아난 이상한 빛들아
     
    시 _ 이성복(1952~ ).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1977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금산』, 『그 여름의 끝』 등이 있다.

    낭송_ 장석주 – 시인.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 공모에 시,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했다. 시집 『오랫동안』과 『몽해항로』를 포함해 책을 여럿 썼다.

    출전_ 아 입이 없는 것들(문학과지성 시인선 275) 『아, 입이 없는 것들』(문학과지성사)

    음악_ 김미정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형


    이성복, 「작은 꽃들아, 이상한 빛들아」를 배달하며

     

    제가 인간인 것이 부끄럽고 민망해서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어요.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 여객선이 침몰하고 꽃다운 목숨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졌을 때 우리 안의 탐욕과 이기주의에 진저리가 쳐졌습니다. 밥알이 모래알처럼 까실하게 혀 위에 구르고, 잠은 얕아서 일어나서도 도무지 피로가 가시지 않았지요. 단 한 명의 목숨도 구하지 못한 채 허둥지둥하는 무능한 국가와 부패한 사회를 공모(共謀)로 만든 우리 모두는 총명과 양심과 명예를 잃었습니다. 가슴을 치며, 내 탓이요!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이 일 뒤로 모란과 작약을 바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그 꽃들마저 얼굴을 돌리는 것 같았거든요. 꽃들이란 이 우주에 뚫린 푸른 구멍으로 솟아난 이상한 빛들일까요? 세상은 빛들로 넘칩니다만 그 빛에 드러난 우리 얼굴은 얼마나 흉측할까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