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고은, 「어느 노동자」(낭송 장인호)

cassia 2013. 7. 22. 17:43

    고은, 「어느 노동자」(낭송 장인호)

     


     

     

    드물고 드문 일이었다

    애꾸눈인 그는

    벽돌 한 판을 찍어내는데

    30분이 걸렸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인가 다시 찍었다

    잠바 입은 사장이 내쫓았다

    그는 혼자 벽돌을 찍기 시작하였다

    그 벽돌은 잘 팔렸다

     

    드문 일이었다

    그는 벽돌 한 장 쌓는데

    10분이 걸렸다

    쌓은 뒤

    몇 번인가 고개를 갸우뚱

    다시 쌓았다

    십장이 내쫓았다

    쫓겨간 그는

    집 한 채를 짓고 죽었다

    소원성취

    오랫동안 탈나지 않는 집이었다

     

    드문 일이었다

    드문 일이었다

    그는 못을 박았다

    박은 뒤

    영영 빠져나오지 않도록 또 박았다

    장도리가 아주 흥이 났다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할 수 있었다

     

    시_ 고은 – 193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고, 1958년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피안감성』부터 시선집 『어느 바람』, 서사시 『백두산』, 연작시편 『만인보』, 최근에 펴낸 시집『허공』을 포함해 150여 권의 저서가 있음.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중앙문예대상, 단재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과 스웨덴 시카다상, 캐나다 그리핀공로상 등을 수상함.

    낭송_ 장인호 – 배우. 영화 <고지전>, <하울링> 등에 출연.

    출전_ 속삭임 ☜ 클릭『속삭임』(실천문학사)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김은미

    프로듀서_ 김태형

     

     

    고은, 「어느 노동자」를 배달하며

     

    그의 손은 거칠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의 손에는 달도 쉬 잡히고 별도 쉬 잡히고 돌도 나무도 쉬 잡혔을 겁니다. 매끄러운 사람의 손 보다는 그런 것들이 더 좋았을 겁니다. 그의 한 쪽 눈은 고단했을 겁니다. 밖을 보지 못한 그 한쪽 눈 말입니다. 그 사물들의 마음을 다 봐야 했을 테니까요. 고단했을망정 그러나 행복했을 겁니다. 사물들과 눈이 맞는 일이니까요.

     

    그는 집을 짓기보다, 생계를 잇기보다 제 마음을 한 채 짓기를 원했을 겁니다. ‘탈 나지 않는’ 마음을 짓고 싶었을 겁니다. 다행입니다. ‘소원성취!’ 내몰림을 당해도 그리 괴로워하진 않았을 겁니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가늠하는 멋진 자세를 지금은 어디서도 쉬 찾을 수 없습니다. 그저 빨리 지어서 팔아 이득을 챙기는 시대이니까요.

     

    드문 일이었다, 드문 일이었다……. 드문 일입니다. 진짜는 드문 일입니다. 알아보는 눈이 없어서도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