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최규승, 「은유」(낭송 최규승)

cassia 2013. 4. 22. 15:56

    최규승, 「은유」(낭송 최규승)

     

     

     

    바람의 문 문의 바람
    빌딩의 숲 숲의 빌딩
    기타의 사운드 사운드의 기타
    마이크의 손 손의 마이크
    하늘의 끝 끝의 하늘
    비둘기의 평화 평화의 비둘기
    노동의 노래 노래의 노동
    행복의 시간 시간의 행복
    슬리퍼의 때 때의 슬리퍼
    모빌의 흔들림 흔들림의 모빌
    화분의 선인장 선인장의 화분
    비상구의 커피 커피의 비상구
    뉴욕의 비행기 비행기의 뉴욕
    후쿠시마의 먹구름 먹구름의 후쿠시마
    감동의 쓰나미 쓰나미의 감동
    그녀의 침대 침대의 그녀
    여인의 울부짖음 울부짖음의 여인
    전위의 읊조림 읊조림의 전위
    이것의 부재 부재의 이것
    나의 너 너의 나
    나의 나 나의 나
    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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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_ 최규승 – 1963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무중력 스웨터』 『처럼처럼』이 있다.
     
    출전_ 처럼처럼『처럼처럼』(문학과지성사)
     
    권재욱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형

     

     

    최규승, 「은유」를 배달하며

     

     왼편 오른편 한 켤레 신발처럼 짝을 맞춘 말들로 흔들흔들, 레고 쌓기를 하듯 이루어진 시 형태가 재미있다. 튼실한 이파리들 무성한데 모래 밑으로는 있는 둥 만 둥하게 뿌리 빈약한 ‘화분의 선인장’ 같다.

     

     모든 시어가 ‘의’로 이루어졌다. ‘의’는 ‘체언이나 용언의 명사형에 붙어, 그 말이 관형어의 구실을 하게 하는 관형격 조사’다. 소유나 소속을 뜻하기도 하고, 앞의 말이 뒤의 말의 주체임을 뜻하기도 한다. 어떤 주체가 어떤 주체를 소유한다고 할 때 기본적으로 소유하는 주체는 당하는 주체보다 상위에 있다(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만. 가령, ‘나의 주인’ 같은 경우). 그런데 이 시에서는 소유의 주체와 객체를 뒤바꿈으로써 상호소유, 상호소속을 드러낸다. 이래도 말이 되고 저래도 말이 되는 우리말 특성을 살린 유희다.

     

     ‘뉴욕의 비행기 비행기의 뉴욕’에서 ‘비행기의 뉴욕’은 자연스럽다. 뉴욕의 하늘에는 비행기가 많이 오갈 테니까. ‘후쿠시마의 먹구름 먹구름의 후쿠시마’에서 ‘먹구름의 후쿠시마’도 텍스트 외적인 사건 때문에 자연스럽고…그런데 간간 은유할 수 없는 걸 짝으로 맺어 놓은 곳이 있다. 가령 ‘하늘의 끝 끝의 하늘’에서 ‘끝의 하늘’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미지를 확장시켰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저 말장난으로 보이기도 한다.

     

     ‘빌딩의 숲’ ‘평화의 비둘기’ 같은 상투적 표현도 간간 눈에 띄는데……. 시인이 그걸 못 알아챘을 리도 없고, 이리 토막토막 내서 들여다보면 안 될 테다……. 아, 최규승의 다른 좋은 시도 많은데 왜 이 시를 골랐다지? 「은유」라는 제목도 마음을 끌었고, 언뜻 ‘전위의 읊조림’이 있어 보여서. ‘노동의 노래’가 아니라 ‘노래의 노동’인 「은유」여라!

     

    문학집배원 황인숙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