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김중식, 「엄마는 출장중」(낭송 남도형)

cassia 2012. 11. 5. 14:56
    김중식, 「엄마는 출장중」(낭송 남도형) 김중식, 「엄마는 출장중」 또 석 달 가량 집을 비우신단다 산 사람 목에 거미줄 치란 법은 없는 모양이군, 나는 생각했다 집 앞이 집 앞이니만큼 질펀한 데서 허부적거리다가 저녁에 들어오니 그저께 밥상보 위의 흰 종이
    머리라도 자주 빗어넘기고
    술 한잔도 두세 번에 나누어 마시거라
    엄마 씀.
    잠은 좀 집에서 자고 

                     아무리 이래도 저래도 한世上 한平生이라는 각오를 했지만 내 삶이 점차 생활 앞에서 무릎꿇고 있다 한량 생활도 사는 건 사는 건데 이건 아닌 것 같고 치욕 없이 밥벌이할 수 있으리요마는 나는 이제 밥벌이 앞에서 性고문이라도 당할 용의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밥상 앞에서 먹고 사는 일처럼 끊을 수 있는 인연이 따로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감기 들면 몸살을 앓으시는 어머니 아! 한가하면 딴생각 드는 법 또 석 달 가량 나는 自由다, 라고 외치자꾸나, 내 젊음에 후회는 없다, 라고 그런데 냉장고에 양념된 돼지 불고기가 있어서 그만 엄마, 소리만 새어나왔다. 시_ 김중식 - 1967년 인천에서 출생. 1990년 《문학사상》에 「아직도 신파적인 일들이」 등 몇 편의 작품이 추천되어 등단. 시집으로 『황금빛 모서리』가 있음. 현재 주 이란 한국대사관의 문화관. 낭송_ 남도형 - 성우. SBS <내 친구 해치>, KBS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에 출연. 출전_ 『황금빛 모서리』(문학과지성사)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_ 김태형 김중식, 「엄마는 출장중」을 배달하며 뭐, 달리 토를 달 것 없이 선명하게 상황이 읽히는, 재밌게 쓴 시다. 읽기에는 재밌지만 그 속살이 쓰라리다. ‘이래도 저래도/ 한世上 한平生’ 이라든가, ‘내 젊음에 후회는 없다’고 옛날 가요 가락을 섞으며 짐짓 취생몽사 한량의 객기를 부리지만, 술 냄새가 펑펑 나는 명정(酩酊) 상태에서도 정신 명징한 청년이, ‘나는 이제 밥벌이 앞에서/ 性고문이라도 당할 용의가 있다는’ 독한 마음을 먹어도 해결이 안 되는 ‘생활’의 징그러움이여. 김중식은 ‘질펀한 데서 허부적거리는’ 이야기도 사뭇 건조하게 그러나 감칠맛 나게, 절제된 언어로 길게 시를 끌고 나가는 힘이 센, 소금 같고 보석 같은 시인이다. 1993년 5월 15일 초판 발행……. 벌써 그렇게 됐나. 시집 『황금빛 모서리』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긴 숨을 토하면서 책장을 덮고 만지작거린다. 조금 닳아 있는 시집 모서리를 나도 모르게 문지르고 긁다보니 조금 뭉개졌다. ‘내가 아프면 당신도 앓으시는 어머니께 이 시집을 바칩니다.’ 이 헌사는 어렴풋이 기억에 있다. ‘그래도 한때는 최선을 다해 방황했다.’는 자서(自序) 한 구절이나 뒤표지 글의 ‘내 삶이 가자는 대로 갔다면 나는 이 자리에 없어야 한다.’는 처음 읽는 듯하다. 김중식은 지금 이란에 있다고 한다. 왠지 울컥, 해진다. 김중식, 우리의 랭보……. 뭐냐? 랭보를 넘어서야지! 그대는 아직 살아 있고, 살아 갈 것이고, 그러니 계속 시를 끌고 가야지! (내가 좀 주제넘었나? -_-) 문학집배원 황인숙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