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엄승화, 「미개의 시」 낭송 장지아

cassia 2012. 9. 10. 08:46
    엄승화, 「미개의 시」(낭송 장지아) 엄승화, 「미개의 시」    튀어오른다. 머뭇거리는 시간의 휘장을 연다. 성년이 된 여인은 건강하고 단순하다. 응시하는 어둠 속 조종은 평화로이 울리고 붉은 정령들의 음악 짐승들은 섭리를 지켜 포효한다. 손톱 부서지고 새들은 알을 쪼아먹고 살찐 땅으로 흐르는 과즙 여인의 젖꼭지에 묻어 있다.   오후는 끝없이 작열하였다. 태양으로 하여 청년의 이마 골짜기보다도 깊고 가장 화려하였던 꽃잎을 문신으로 새긴 처녀들 지붕 위에서 타악기처럼 적막히 소리지른다. 한때 아버지였던 사나이들 앵두나무 꽃가지에 매달려 지평선을 이루며 놀고 있다.   이제 해 지는 언덕에서 불탄다. 무덤이 있는 숲의 상처와 습기들 핥던 사랑 종탑 위의 먼지 높이 날아 허공을 벨 때 아름다운 여인이 쓰러지는 것은 쓰디쓴 자유를 누림이라 밤이 오면서 지평선은 동트는 곳이 되었고 어둠의 짙은 광채 오랜 세월 공처럼 튀어올랐던 무릎에 휘감길 때 붉은 지렁이는 그곳에 있어 알 수 없는 세계의 뜨거움과 싸우고 이긴다. 시_ 엄승화 - 1958년 강원도 영월 출생. 시집 『온다는 사람』이 있음. 현재 뉴질랜드의 한적한 동네에서 아담한 와인가게을 운영하고 있음. 지난 7월 14일, 프랑스대혁명 기념일에는 가게에서 ‘프랑스의 날’이란 이름으로 행사를 열어, 호쾌히 제공된 치즈와 비싼 프랑스 포도주에 동네어르신들이 모처럼 근처가 들썩거리게 즐거워하셨다고. 낭송_ 장지아 - 배우. 연극 <우어파우스트>, <아마데우스> 등에 출연. 출전_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제삼기획)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형 엄승화, 「미개의 시」를 배달하며 인공의 기미가 전혀 없는 날것의 자연을 탐미적으로 그린 시다. ‘붉은 정령들’ ‘가장 화려하였던 꽃잎을 문신으로 새긴 처녀들’ ‘해지는 언덕에서 불탄다’……. 붉은, 붉다 못해 검붉은 색채감을 곳곳에서 내뿜으며 죽음이나 늙음마저도 화사하게 만든다. 절정의 단맛을 향해 치달아가는 한여름의 검붉은 자두처럼 한젊음이 잉잉거리는 신열로 탱탱하다. “아, 나는 얼마나 젊은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시 속의 여인이 스스로 매혹되어 저도 모르게 뽐내며 ‘적막히’ 선포하는 소리 들리는 듯하다. 승화, 정말 시 잘 썼었구나! 30년쯤 전 발표됐던 친구의 시를 찾아 읽으며 새삼 감탄한다. 독보적으로 감각적인 시를 썼던 엄승화. 다정하고 자유분방하고 아름다웠던 그녀. 우리 모두 젊었던 시절, 문단의 ‘선데이 서울’이라 일컬어졌던 이가 유포한 말이 있다. “시단에 미녀 삼총사가 있으니, 김경미, 엄승화, 이상희(이름, 가나다 순)로다.” 그녀 셋 다 여전히 아름다운데, 엄승화만 글나라에서 멀리 있다. 한글나라-대한민국에서도 멀리 있다. ‘오랜 세월 공처럼 튀어올랐던 무릎에 휘감길 때 붉은 지렁이는 그곳에 있어 알 수 없는 세계의 뜨거움과 싸우고 이긴다.‘ 오래 견딘다는 건 가장 힘든 싸움. 너는 싸웠고, 이긴 것 같다. 봄이면 사고치고 싶다던 승화야, 그곳은 이제 봄이 왔겠지. ‘9월의 봄’이란 제목, 어떻니? “문득 밀려드는 죽을 것 같은 쓸쓸함, 가슴이 에이는 쓸쓸함”을 무화시키지 말렴! 시를 쓰렴! 엄승화가 드디어 시를 쓴다면, 어떤 시를 보여줄지 너무 궁금하다. 문학집배원 황인숙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