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박목월 詩 / 사투리 外,

cassia 2012. 6. 2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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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투리 / 박목월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나는 머루처럼 투명한

    밤하늘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디가 새까만

    뽕나무를 사랑했다.

    혹은 울타리 섶에 피는

    이슬마꽃 같은 것을......

    그런 것은

    나무나 하늘이나 꽃이라기보다

    내 고장의 그 사투리라 싶었다.

     

    참말로

    경상도 사투리에는

    약간 풀냄새가 난다.

    약간 이슬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에 마르는

    황토흙 타는 냄새가 난다.

     

     

    -시집 <박목월 시선집> 정음사

     

     

     

    소곡(小曲) / 박목월

     

    불이 켜질 무렵

    잠드는 바람 같은

    목마름

     

    진실로

    겨울의 해질 무렵

    잠드는 바람 같은

    적막한 명목(暝目)

     

    * 小曲 소고 : 간결하고 작은 악곡 . 暝目 명목 : 눈을 감음

     

    # 고요하다. 뭉클하다. 불이 켜지는 시간과 어둠이 내리는 시간. 바로 해질 무렵의 황혼 시간을 그것도 겨울의 해질 무렵을 이 시는 우리들 마음 안에 소리 없이 부려 놓는다. 그러나 겨울은 계절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들 마음의 아득한 근원적 목마름을, '진실로'를 축으로 밝음과 어둠을 화해시킴으로써 갈증을 다스리게 하는 종교적 거룩함까지 안겨 준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 일곱 줄의 지극히 절제된 소곡 안에 대단원의 생의 밑그림이 선명하게 다 담겨 있지 않은가. (신달자)  

     

     

    신춘음(新春吟) / 박목월 
     
    오냐, 오냐, 오냐.
    어머니의 목소리로
    얼음 밑에서도 살아나는
    미나리.
    오냐, 오냐, 오내,
    어머니의 목소리로
    환하게 동이 트는
    새날의 새벽.
    믿음과 긍정의
    누리 안에서
    훈훈하게 열리는
    남쪽의 꽃봉오리.
    오냐, 오냐, 오냐.
    어머니의 목소리로
    사방에서 들리는 사랑의 응답
    오냐, 오냐, 오냐.
    어머니의 목소리로
    우리는 흐뭇하게
    멱을 감으며
    오냐, 오냐, 오냐.
    어머니의 목소리로
    동에서 서까지
    먼 길을 가며 ….

     

     

    신춘음(新春吟) 2 / 박목월

    하루종일
    열리우고 닫히는 문 옆에
    말이 없는
    탁자의 수선 같은 것
    그것을 생각한다
    혹은 텅 빈 뜰을
    거리에 내리는 눈을
    치렁치렁한 성좌를
    그리고
    눈 위로 부는 바람과
    조석으로 달라지는 바람의 향기를
    들뜨지 말자
    떠들지 말자
    덤비지 말자
    조용히 풀 한 포기.
    말 한마디를 소중히 하는 것
    그것을 생각하다
    우리 생활이 아무리 분주하더라도
    또한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야
    비로소 의식에 궁하지 않는 것이
    인간에 주어진 형벌일지라도
    조급히 굴지 말자
    설레지 말자
    항상 마음을 비어두고
    가난 속에 스민 은혜와
    고뇌 안에 싹트는 구원과
    절망 속에 넘실대는 희망을
    한 팔로 싸안고
    소란한 시대일수록
    총명한 눈을 뜨고
    조용하자
    진실로
    인간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닐진대
    무엇에 우리의 생활이
    구속되랴
    문득 검은 머리털에
    한 오리 백발을 발견하듯
    그런 마음으로
    탁자의 수선 같은 것을
    코에 어려오는 눈 바람 내음새 같은 것을
    유심히 생각하자
    자연스러운 삶은
    무심히 퉁겨진 주판알이
    일정한 수치를 지니듯 한 것
    생의 보람을
    계산하지 말자 

     

     

     

     

     

    박동규 교수가 전하는 박목월의 시와 삶

     

    "가난과 가족, 기독교적 삶의 태도가 아버지 박목월 시의 원동력"

     

    박동규 교수(서울대 명예교수)가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진 부친 박목월 시인의 시와 삶을 풀어놨다. 27일 밤 서울 마포구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담임목사 이재철)에서 열린 양화진문화원(명예원장 이어령) 목요강좌에서다.

     

    박동규 교수는 “입으시던 여섯 벌의 내복은 구멍으로 성한 곳이 없고, 겨울이면 잉크가 얼어 입으로 녹여서 쓰느라 입술이 퍼렇게 물드셨던 아버지. 비단보다 섬세하고 부드럽고 인정 많으셨던, 언어 속에 감춰진 정서를 끌어내신 분”이라며 박목월 시인을 회고했다.

     

    "받고 싶은 선물을 말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때, 그렇게 갖고 싶었던 구두를 차마 말을 못하고 방에 들어와 우는데 아버지께서 오셔서 날 들춰 보시더니 ‘이 녀석 울고 있었구나. 철이 들었구나, 철이 들었어.’라고 하시며 나와 함께 오래 우셨습니다.”라며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

     

     

     

    ▲ 박동규 교수    뉴스파워

     

    그는 “불쌍한 아버지 얼굴만 봐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철이 듭디다. 감수성의 더듬이가 가슴 저 깊은 곳까지 닿아 그것을 끌어올려 시로 표현하신 분. 우리가 산다는 것은 이런 인식과 정서를 내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지, 동물적으로 본능적으로 자식을 그냥 키워가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라며 따뜻하고 헌신적인 아버지로 한 생을 사셨던 박목월 시인의 작품들을 소개했다.

     

    또한 "무엇이 풍족한 삶인지 아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며 박목월 시인의 기독교적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아버지가 감성이 여리시기 때문에 상처 받을 때마다 신의 존재로부터 그 치유를 받았습니다.”라고 전했다.

     

    양화진 문화센터에서 만난 박동규 교수는 박목월 시인의 시와 삶을 적절히 조합하여 이야기를 꾸려갔다.

    그는 “잘 곳이 없어 4개월을 학교 온실에서 생활한 아버지가 맨 땅에 가마니를 깔고 누워 밤하늘을 보니까 별이 때로는 친구가 되고 이불이 되더랍니다. 그래 별과의 이야기를 적어보자. 아버지 여섯 살 때 이야기입니다.”라며 박목월 시인이 시를 쓰게 된 동기를 밝혔다.

     

    “아버지께서 어느 여름 논둑길에 접어드는데 논둑을 덮어놓은 진흙을 밟으니 신발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발바닥 모양이 찍혔습니다. 신발 밑창이 다 헤어져 맨 발바닥 자국이 남은 것입니다. 그 발바닥을 보니 발금이 꼬불꼬불 남도 삼백리.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처럼 살고 싶은 심정을 그리시게 된 겁니다.”라며 전망과 지향이 내재된 것이 박목월 시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신앙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그가 소개한 박목월 시 ‘어머니의 언더라인’의 한 구절이다.

     

    ‘유품으로는 그것뿐이다. 붉은 언더라인이 그어진 우리 어머니의 성경책. 어머니가 그으신 언더라인은 당신의 신앙을 위한 것이지만 오늘은 이순의 아들을 깨우치고...(중략) 당신의 신앙이 지팡이가 되어 더듬거리며 따라가는 길에 내 안에 울리는 어머니의 기도소리.’

     

    박동규 교수는 “나는 이 기도를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세상 떠나갈 때 뭘 남기고 싶으세요? 그 줄쳐진 말씀 속에서 내가 잘못한 것을 뉘우치는 방법, 엎어졌다 일어나는 방법을 깨우친 것 아니겠습니까.”라며 자연과 인간과 신과의 관계를 통해 모든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신앙인으로서의 아버지를 회고했다. / 옮긴 글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