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엄원태, 「전도섭」(낭송 배상돈)

cassia 2011. 8. 8. 13:58
    엄원태, 「전도섭」(낭송 배상돈) 엄원태, 「전도섭」 하루에 오천번 절하는 사람 있다. 전도섭(46)은 길 위의 참회자이자 김밥 장수. 밀리는 차들은 물론 쌩쌩 달리는 차들에까지, 그는 안타깝게도 여지없이 구십도 꺾은 공손하기 짝이 없는 허리절을 한다. 하루에 칠천번 절한 적도 있다. 하루 오십개 파는 김밥은, 그의 절 공덕에 비하면 덤 같은 보시! 그의 집은 컨테이너 한칸. 따뜻하지만, 연탄보일러 때문만은 아니다. 김밥 잘 마는 아내 김선미(39)와 파스 잘 붙이는 아들 민주(14), 재롱둥이 딸 민영(2)과 단란하게 산다. 비록 하루 세 시간 수면, 장좌불와(長坐不臥)에 가까운 수행자의 길에 그의 생활이 바쳐진 셈이지만. 지은 죄업에 비하면, 오천배 절 보속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도섭씨, 민주와 민영의 나이차 십이년. 모르긴 해도 그 짧지 않은 터울에 도섭씨의 죄업(?), 그 단초가 숨어있을 듯하다. 어쨌거나, 그는 요즈음 도의철(25)이라는 '절하는 김밥장수'계의 도반이자 제자까지 두었다 한다. 폭설 몰아치는 바람 센 새벽 네시, 전라도 어딘가의 산업도로변 눈보라로 하얗게 지워진 여명 풍경 속, 전봇대들뿐인 텅 빈 들녘에 한점 가뭇한 윤곽으로 서서, 그는 이따금 승냥이처럼 외롭게 질주하며 오가는 화물차에 지극정성, 절을 한다. 시_ 엄원태 - 1955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0년 《문학과사회》에 「나무는 왜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는가」 외 4편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했다. 시집으로 『침엽수림에서』, 『소읍에 대한 보고』 등이 있다. 1991년 제1회 대구시협상, 2007년 제18회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했다. 낭송_ 배상돈 - 배우. 뮤지컬 〈멋진 인생〉, 연극 〈마누래 꽃동산〉, 〈지대방〉 등에 출연. 출전_ 『물방울 무덤』(창비) 엄원태, 「전도섭」을 배달하며 한 사람의 인생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숨 쉬고 있는 걸까요. 내 살아온 거 받아 적으면 못 되도 책이 한 권이여! 인생 좀 살았다는 어른들에게서 흔히 듣는 말이긴 하지만, 낱낱의 인생살이가 사실 책 한 권보다 못할 리 없습니다. 우린 모두 저마다의 인생을 적어가는 작가들! 콘테이너 한 칸짜리 집에서 김밥 잘 마는 아내와 두 아이와 사는 도섭씨의 인생도 책 한 권의 무게쯤 거뜬히 넘길듯합니다. 하루 오천 번 길 위에다 절을 하는 도섭씨는 무엇을 참회하고 있는 걸까요. 사랑하고 애 낳고 사는 일이 무슨 죄겠어요, 싶다가 하루 오천 번 절 해서 김밥 오십개 파는 일이란 하루에 오천 번이라도 절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지! 싶어지니 마음 한 녘이 뜨끈해지는데요. 변방 낮은 자리의 도섭씨를 시로 되살려 기억하며 우리 삶의 바탕이 되는 지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인의 마음 웅숭깊어 출출한 여름밤, 배고픈 줄 모르겠습니다. 배 안고파도 전도섭씨 같은 사람에게서 김밥 한줄 사고 싶습니다. 문학집배원 김선우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