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차창룡, 「고시원에서」(낭송 정재학)

cassia 2011. 6. 14. 13:19
차창룡, 「고시원에서」(낭송 정재학)
    박성룡, 「교외(郊外)」(낭송 이재훈) 차창룡, 「고시원에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이곳에서 산다 한때는 야망을 품고 이곳에 왔고 한때는 갈 데가 없어 이곳에 왔으나 가족들과 헤어진 사람들이 이곳에서 산다 가족들을 잊기 위해 산다 가족들을 잊지 못해 산다 가족들과 영영 헤어지기 위해 산다 헤어짐이란 고시와도 같은 것 나는 날마다 고시공부하듯 결별의 책을 읽는다 벽마다 책이 쌓여서 무너질까봐 그 위를 무거운 책으로 눌러놓고는 나를 포위한 책 속에서 행복하다 책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게는 책으로 만든 장작불이야말로 최고의 다비식을 제공할까 바람이 많은 곳이어서 바람은 혹은 바람이 전혀 없는 곳임에도 없는 바람마저 뼛속을 누빈다 뼛속을 빼고는 관속처럼 아늑하여라 창문 없는 내 방이여 참 이상하다 사람이란 바람을 피해 바람이 없는 방을 찾더니 바람이 그리워 방을 옮기는 사람이란 바람을 배반하고는 바람에게 배반당하리 옮기자마자 북쪽에서 바람이 몰려온다 고립의 성채를 두드리는 바람 두려워 나는 확 창문을 닫는다 바람과 함께 들어오던 삼각산이 유리에 이마를 부딪혀 푸른 피를 흘리는데도 시_ 차창룡 -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이 있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함. 2010년 봄 출가해 새로운 세계에서 구도정진 중. 낭송_ 정재학 -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96년 《작가세계》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광대 소녀의 거꾸로 도는 지구』 가 있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함. 출전_ 『고시원은 괜찮아요』(창비) 차창룡, 「고시원에서」를 배달하며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즈음의 고시원. 갈 곳 없는 이들이 고시 공부하는 이들보다 더 많은 고시원엔 가장 깊은 고독을 등짐 진 이들이 찾아듭니다. 현대인의 고독 저 밑바닥엔 크고 작은 이산(離散)의 아픔들이 있지요. 이산의 이유야 다양하겠으나 통증의 뿌리는 비슷할 겁니다. “가족들을 잊기 위해 산다 / 가족들을 잊지 못해 산다”라고 시인이 말할 때, 눈물도 말라버린 이 도시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 헤매는 것인지 문득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헤어짐’이라는 고시를 치루며 더러는 유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밖에 없는 누군가들이 있습니다. 이 시는 그 누군가들 속에 우리가 있음을 경험한 시인이 조용히 우리에게 내미는 손입니다. 고립의 바닥을 먼저 맛본 시인이 내미는 손을 잡고, 그대여 고립으로부터 뛰쳐나와 스스로의 창문을 내시길. 산자는 삶으로! 문학집배원 김선우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