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박노해, 「꼬막」(낭송 장인호)

cassia 2011. 5. 23. 02:32
    박노해, 「꼬막」(낭송 장인호) 박노해, 「꼬막」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 꼬막을 삶는 일은 엄숙한 일 이 섬세한 남도南道의 살림 성사聖事는 타지 처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모처럼 팔을 걷고 옛 기억을 살리며 싸목싸목 참꼬막을 삶는다 둥근 상에 수북이 삶은 꼬막을 두고 어여 모여 꼬막을 까먹는다 이 또롱또롱하고 짭조름하고 졸깃거리는 맛 나가 한겨울에 이걸 못 묵으면 몸살헌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 감사전화를 했더니 찬바람 부는 갯벌 바닷가에서 광석이 목소리가 긴 뻘 그림자다 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 같지 않다야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렀어야 아니 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 긍께 그 머시냐 태풍 때문이 아니것냐 요 몇 년 동안 우리 여자만에 말이시 태풍이 안 오셨다는 거 아니여 큰 태풍이 읎어서 바다와 갯벌이 한번 시원히 뒤집히지 않응께 말이여 꼬막들이 영 시원찮다야 근디 자넨 좀 어쩌께 지냉가 자네가 감옥 안 가고 몸 성한께 좋긴 하네만 이 놈의 시대가 말이여, 너무 오래 태풍이 읍써어 정권 왔다니 갔다니 깔짝대는 거 말고 말여 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아엎는 태풍이 읍써어 어이 친구, 자네 죽었능가 살았능가 시_ 박노해 -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한 후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며 한국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분단된 한국사회에서 절대 금기였던 ‘사회주의’를 천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하여 1991년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 받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을, 1997년 옥중 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펴냈다. 1998년 석방된 이후 스스로 사회적 발언을 금한 채 2003년 이라크 전쟁터 등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의 가난과 분쟁지역에서 글로벌 평화나눔을 펼치고 있다. 2010년 10월, 10여 년 동안 육필로 새겨온 5천여 편의 시 중에서 300편을 묶은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 낭송_ 장인호 - 배우. 〈위선자 따르뛰프〉, 〈갈매기〉 등 출연. 출전_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 걸음) 박노해, 「꼬막」을 배달하며 최고의 갯벌을 가진 벌교 앞바다 여자만의 꼬막은 예로부터 유명했지요. 벌교에서 꼬막을 사면 가까운 시장 뒷골목 밥집들에서 꼬막을 삶아줍니다. 불 옆을 지키고 섰다가 “바로 지금이요!” 딱 맞춤하게 꼬막을 익혀 내놓는 아주머니들의 손길에는 위풍당당함이 있지요. 이 싱싱한 자긍심에 슬며시 끼어든 시인의 친구 ‘광석씨’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꼬막밭 농사도 소출이 많아야 신이날텐데 자꾸 소출이 준다는군요. 이유인즉슨, 썩은 것들 깨끗이 갈아엎는 태풍이 없기 때문이라고요. 그래요. 자연이나 인생사나 ‘바로 그것’이 필요한 시점이 있는 거지요. 고인 채 썩어가지 않도록 때맞춰 스스로 태풍을 일으키며 살아야 하지요. 그걸 잊으면 시나브로 ‘영 시원찮아진’ 꼬막 신세 될지도 모릅니다. 문학집배원 김선우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