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가족사진」(낭송 신동옥)
유홍준, 「가족사진」
아버지 내게 화분을 들리고 벌을 세운다 이놈의 새끼 화분을 내리면 죽을 줄
알아라 두 눈을 부라린다 내 머리 위의 화분에 어머니 조루를 들고 물을 뿌린다
화분 속의 넝쿨이 식은땀을 흘리며 자란다 푸른 이파리가 자란다 나는 챙이
커다란 화분모자 벗을 수 없는, 벗겨지지 않는 화분모자를 쓴다 바람 앞에
턱끈을 매는 모자처럼 화분 속의 뿌리가 내 얼굴을 얽어맨다 나는 푸른 화분모자를
쓰고 결혼을 한다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넝쿨을 뚝 뚝 분지른다 넝쿨을 잘라
새 화분에다 심는다 새 화분을 아내의 머리 위에 씌운다 두 아이의 머리 위에도
덮어씌운다 우리는 화분을 들고 사진관에 간다 자 웃어요 화분들, 찰칵 사진사가
셔터를 누른다
◆ 시_ 유홍준 - 1962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 『시와반시』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나는, 웃는다』 등이 있음. 윤동주문학상,
시작문학상 등을 수상함.
◆ 출전_ 『상가에 모인 구두들』(실천문학사)
유홍준, 「가족사진」을 배달하며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면서 자란 자식은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그 아버지를 닮는다고 합니다. '화분'은 바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물림되는
내면화된 폭력과 그 상처일 것입니다. 그 화분에서 자라는 화초는 발육도 좋아서
무럭무럭 자라 "챙이 커다란 화분모자, 벗겨지지 않는 화분모자"가 됩니다.
이 화초는 무의식에 깊이 뿌리 박혀 보이지 않게 자라다가 행복한 가족사진을
찍던 어느 날 갑자기 보였겠죠. 이미 눈과 코처럼 몸의 일부가 된 화분 모자를
어떻게 벗을 수 있겠어요?
그러나 시에서는 이 폭력과 상처가 화분 놀이를 위한 즐거운 재료가 됩니다.
시에는 어떤 괴로움도 허구의 상상력에 녹여 즐거움으로 제련시키는 힘이 있답니다.
/ 출처 : 출처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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