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라연, 「고사목 마을」(낭송 박신희)
피를 빛으로 바꾼 듯
선 자리마다 검게 빛났다
아는 얼굴도 있다
산 채로 벼락을 몇 번쯤 맞으면
피를 빛으로 바꾸는지
온갖 새 울음 흘러넘치게 하는지
궁금한데 입이 안 열렸다
온갖 풍화를 받아들여 돌처럼
단단해진 몸을 손톱으로 파본다
빛이 뭉클, 만져졌다
산 자의 밥상에는 없는 기운으로
바뀌치기 된 듯
힘이 세져서 하산했다
◆ 출전 : 『빛의 사서함』(문학과 지성사)
박라연, 「고사목 마을」을 배달하며
모차르튼나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잔잔하고 아름다운 선율에서
종종 진한 고통의 시간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고통을
환희로 만든 오랜 시간의 숙성을 생각하지요. 온몸을 전율시키는 마술을
피와 살결로 생각하지요.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산 채로 벼락을 맞는"것 같은 충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아픔은 당장은 몸과 마음을 파괴할 것입니다. 시나 예술에는
그 아픔을 오랫동안 숙성시켜 환희로 바꾸는 마술적인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돌처럼 단단하게 말라 죽은 나무에서
"빛이 뭉클" 만져지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은 나무에서 "아는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의 극점에서 벼락같은 빛이 지나가 겉은 망가졌으되
내면은 밝아진 바로 그 얼굴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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