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목련꽃 외

cassia 2007. 8. 31. 15:27

목련꽃 외


                          구암고등학교장 손병현




   내 아무 가진 것 없어도

   그대 눈썹 위에 머무는

   넓고 깊은 생각으로 사느니


   무너지고 스러지는 것들

   모두가 당신의 뜨거운 몫인 것을


   위대하도다

   당신이여


   죽어서도 내 그리움의

   꽃으로 피어 있을 당신이여

   탐욕없는 지애비

   그래서 나는 행복하느니


   그대

   울 엄마 같은 하얀 목련꽃

   무거운 이승의 끝까지

   남은 저승의 끝까지

   거듭 사랑하노라

黃  菊


   비 온 뒤

   산빛도 맑은데

   오늘은 才談 많은 權兄의

   잔정 같은 黃菊이 피어서

   孤寂한 나의 하루를

   꽃빛으로 물 들인다

   감히 犯하지 못할

   이 至純한 語法이여

   盆의 흙을 다독거리며

   맺힌 마음을 푸니

   靑山 앞에 선

   내 그림자가 다시는 부끄럽지 않다


장  마


   장마는 계속되리라 한다


   해묵은 일기장을 넘기노라니

   가슴이 따뜻하다

   먹을 풀어 적는 사연


   愚直한 내 한 생애와

   天性이 어진 食率들


   방안 가득히 墨香은 돌아

   뜰 모퉁이 잡초는

   저들의 하늘로 뻗고 있다


   날이 흐려도

   내 가야 할 길은 잘 보인다


가을․그 周邊


   서걱이는 갈대밭 사이

   산새가 날아와 지저귄다

   어느 날엔가 저 산새 소리가

   끝내 저들을 울릴

   우연한 노래가 될지라도

   아이들은 산새 소리를 들으며

   노을에 젖은 얼굴들을 씻고 있었다

   무심히 바라보는

   하늘 한 모서리,

   두어 점 구름이 묻어 있다


겨울 엽서


   앙상한 나뭇가지에

   달빛이 차다

   깊은 밤, 홀로 차를 마시며

   부처님의 說法을 읽는다

   세상도 모르고 사는, 나는

   언제나 철이 들어

   가슴에 와 닿는

   저 별의 아득한 뜻을 알까

   멀리 시집간 누이야,

   창밖에는 마른 잎들이 진다

   첫눈이 오걸랑

   눈 덮인 낙엽을 밟으며

   설레설레 오너라


보름달과 휘파람


   한가위 보름달은

   앞산이나 고향 동산보다

   우리들 가슴 속에 가장 먼저 떠 오릅니다


   둥근 달 속에 비추어 보는 이승의 삶은

   지난 여름의 끝자락을 흔들던

   애처러운 풀벌레 울음처럼 눈물겨운 것을


   그래도 오늘

   우리들의 순결한 노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주보거니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위를

   그 누구도 닮지 않은 발걸음으로

   휘파람을 불며 걸어서 갑니다


   문득

   가난한 ‘내’ 작은 등을 어루만지며

   휘파람을 불어 주는

   손이 따뜻한 그대 이름은


墨畵로 그린 自畵像


   봄이 와도

   아직은 시린 내 가슴.


   물오른 나뭇가지 사이로

   3월의 하늘은 멀고

   어느 날의 근심처럼 쌓였던

   먼 산의 殘雪도 녹은 지 오래다


   문득 머리 위로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

   잃어버린 내 노랫말의 한 小節


   새를 바라보는 내 모습을

   어루만져 墨畵로 담으면

   追憶 속에 가물거리는

   그리운 얼굴 하나.


   愚直한 내 한 生涯가

   그래도 이 봄에 多幸하여

   꽃망울이 터지는 개나리 곁에서

   술을 한 잔 해 버렸다.

   가슴은 아직 지긋이 시리지만

□ 蛇 足 □


존경하는 進友會 모든 선배님,

모든 회원님들의 건승을 기원하오며 소생의 졸작 시 몇 편을 실었습니다. 명작도 아니고 실험의식이 반영된 훌륭한 작품도 아닙니다. 그러나 젊은 날에 간직했던 정서나 삶의 작은 조각들을 그냥 버리고 가기에는 아까운 느낌이 들어 끼적거려 본 것들입니다. 詩作이란 것이 명성을 드높이는 수단도 아니고 생계를 보장하는 길은 더욱 아닌 듯합니다. 하지만 찌든 일상을 아무 의미없이 살기보다는 때로는 생각에 잠기어 보고 또 삶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것도 이 세상을 좀 더 엄숙하게 사는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재능은 없으나 계속 습작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존경하는 進友會 모든 선배님,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시며 당신의 아름답고 고귀한 젊은 날을 모름지기 교직 발전을 위해 다 바치신 고매한 뜻을 새삼 기리옵니다. 이제 어느 동네 어귀나 한가한 산자락에 서서 千年의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고목처럼 이 풍진 세상의 苦樂을 어루만지시며 길이 건강하시길 기원하옵니다. 여기 적어 올린 졸작들은 작품이라기에는 부끄러우나 지난날의 정의를 아직 저버리지 않은 당신에 대한 소생의 충정이라 헤아려 주신다면 한껏 만족하겠습니다.

사랑하는 進友會 모든 선배님들의 건강과 안녕을 거듭 기원하오며.........-2006. 7.  장마가 계속되는 여름날

경북 칠곡군 가산면 유학산 원정마을 시골방에서

□ 손병현(孫炳鉉)


1947. 대구 출생 /경북대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1974. 월간 <詩文學> 추천/1975. 시집 <강가에서>/1987. 시집 <어느 날의 시>/현재 구암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