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모란이 피기까지는

cassia 2007. 4. 3. 12:15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문학>3호 1934.4)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모란이 피기를 기다림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모란을 잃은 슬픔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모란이 피기를 기다림 

 

* 모란[牡丹] : 미나리아재비과의 낙엽 활엽 관목.(본음은 '목단')

-'모란'은 이 시의 중심 제재로서, 정물적인 대상이라기보다는 시적 자아의 소망과 기원이 집약된 하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모란'은 '봄','보람'의 시어들과 결합하여 하나의 의미를 형성하고 있는바, 우아함의 상징인 모란의 선택은 이와 같은 시적 자아의 소망에 담긴 유미주의적 성격을 엿볼 수 있게 한다.

* 시적 자아에게 있어 '봄'은 시적 자아의 소망과 기원의 상징인 '모란'이 피는 계절이기에 환희의 계절이다. 그렇기에 봄이 오더라도 모란이 피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한 계절의 도래일 따름이며, '나의 봄'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나의 봄'은 나의 소망과 기원이 모란으로 피어난 그때서야 찾아오는 것이다.

* 하냥 : 한결같이, 줄곧

---------------------------------------------------------------------------------

key point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일 게다. 비록 그것이 나에게 슬픔을 줄망정 그 꿈을 버리지 않겠다는 집념과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정성들여 가꾼 모란, 그것들이 피기를 기다리는 '오월', 화자가 기다리고 또 보내기를 꺼려하는 '봄'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일까? '오월'이 가면 또다시 그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봄'은 시인이 시대 배경을 염두에 두고 노래 부른 것인가? 지식인들이 겪어야 했던 실의와 좌절감에서 벗어나 보람과 이상이 꽃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화자가 기다리는 '봄'의 의미를 앞에서 말한 것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면 그럼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는가? 자아에서 큰 이상과 가치의 세계로까지 확대되는 보람과 최고 목적이 '봄'에 포용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며 음미해 보자.
1930년대 시문학파(순수시파)의 대표적 시인인 영랑은 경향파의 목적시를 거부하고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였다. 아름다운 시어, 감미로운 서정, 여성적인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여성적,낭만적, 유미적
▶ 어조 : 여성적 어조
▶ 표현 : 역설적 표현
▶ 제재 : 모란의 개화
▶ 주제 :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림

1.모란의 상징 의미를 표현한 시어를 둘 찾아 쓰라.
▶ 봄, 보람

2.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때가 되면 모란은 지고 언젠가는 다시 피어나리라는 사실을 이 시의 화자는 알고 있다. 그에 따라 화자는 설움에 잠기기도 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화자는 그에 대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할 뿐이다. 이러한 수동적인 인생관을 반영하고 있는 부사 두 개를 찾아 쓰라.
▶ 비로소, 아직

3. 모순 형용을 통해, 비애까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김영랑의 유미주의적 태도가 잘 나타난 시구를 찾아 쓰고, 그 뜻을 알기 쉽게 설명하라.
▶ (1) 찬란한 슬픔의 봄
(2) 봄은 그가 기다리는 모란이 찬란하게 피어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덧없이 지기도 하는 계절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찬란하리만큼 승화된 슬픔의 경지로 이해할 수 있다.)

4. '한 해'와 '삼백 예순 날'이라는 표현이 지니는 의미상의 차이점을 설명해 보라.
▶ '한 해'는 모란이 한 순간에 덧없이 진다는 느낌이 표현된 것이고, '삼백 예순 날'은 꽃이 필 때까지 손꼽아 기다리는 안타까움과 지리한 느낌(슬픔의 정감적 깊이)이 표현되어 있다.

5. 이 시 마지막 행의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구절이 지닌 역설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시에서 봄은 자연 속에서 순환하며 찾아오는 계절 중의 하나를 일컫는 것이라기보다, 모란으로 상징되는 시적 자아의 보람이 실현되는 순간을 가리키는 일종의 관념으로서 제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시적 자아의 기다림의 절정의 순간이며, 기쁨과 환희의 계절이다.

그러나 잠시 피었던 모란은 이윽고 지고 말며, 따라서 시적 자아의 '봄'도 가 버린다. 기쁨과 환희는 한 순간이며, 모란이 피어있는 잠시동안의  봄 또한 모란이 지고 말리라는 예감으로 인해 고통스럽고 슬픈 시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잠시 동안이지만, 모란이 피어나는 '나의 봄'을 기다리는 시적 자아의 태도는 절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란이 진 삼백 예순 날을 눈물로 보내더라도, 시적 자아는 자신의 소망의 절대적 표상인 '봄'을 끝까지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품는다 . 그와 같은 시적 자아의 의지는 모란이 피는 한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 처절하기조차 하다.

비애 속에서 솟아나는 이와 같은 처절한 의지는 슬픔으로 얼룩진 봄을 찬란한 것으로 승화시키기에 이른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역설적 표현은 이와 같은 순수미에 대한 시적 자아의 철저한 추구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시는 영랑이 남달리 좋아하던 모란을 소재로 하여 한시적(限時的)인 아름다움의 소멸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의 비애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모란'은 실재하는 자연의 꽃인 동시에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대유적 기능의 꽃이다.
연 구분이 없는 이 시는 작품 속에 전개되는 시간의 추이로 보아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인 첫째 단락은 1∼2행이며, 미래인 둘째 단락은 3∼4행, 과거인 셋째 단락은 5∼10행, 현재의 넷째 단락은 11∼12행으로 첫째 단락의 반복이다. 첫째 단락에서 시적 화자는 모란이 필 그의 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둘째 단락에 이르면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모란이 떨어져 다시 슬픔에 잠기게 될 것을 예견하고 있으며, 셋째 단락은 그가 설움에 잠기게 될 미래의 상황을 증명해 줄 뿐 아니라, 그가 갖고 있는 삶의 구도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오직 모란이 피어 있는 순간에만 삶의 보람을 느끼는 시적 화자에게 있어서 모란은 봄과 등가적(等價的) 가치로 그의 소망을 표상한다. 그가 추구하는 소망 세계가 무엇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그것이 모란으로 대유된 어떤 절대적 가치의 미(美)라고 한다면, 시적 화자는 모란이 피어 있을 때는 자신의 소망이 성취된 것으로 생각하여 보람을 느끼다가, 모란이 지고 말았을 때는 봄을 여읜 보람을 상실한 허탈감에 빠져, 마치 한 해가 다 지나버린 것으로 생각하는 감상적 유미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화자의 한 해는 '모란이 피어 있는 날'과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날'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9·10행에서 볼 수 있듯이 모란이 피어 있는 날을 제외한 그의 나날은 '하냥 섭섭해 우는' 서러움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넷째 단락에 이르러 화자는 모란이 피는 날을 계속 기다리고 있겠다는 심경을 토로하면서 자신이 기다리는 봄이 다만 '슬픔의 봄'이 아닌, '찬란한 슬픔의 봄'임을 시인하게 된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 '찬란한 봄'이라는 의미보다 '슬픔의 봄'이 강조된 표현이라면, 표면적으로는 화자가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기대와 희망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란을 잃은 설움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란에 자신의 모든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비실제적 세계관의 소유자인 화자가 한 해를 온통 설움 속에서 살아갈지라도 그의 봄은 결코 절망뿐인 '슬픔의 봄'이 아니다. 왜냐하면, 계절의 순환 원리에 따라 봄은 또 올 것이고, 봄이 오면 모란은 또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슬픔은 다만 모순 형용의 '찬란한 슬픔'으로 언제까지나 그를 기다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줄 뿐이다.
모란이 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며 설움에 잠겨 있는 화자의 태도는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와 <내 마음을 아실 이>에서 보여 준 바 있는 '내 마음'의 세계를 한층 더 내밀화시키는 것으로, 영랑으로 하여금 외부 사물과 역동적인 상호 작용을 취하지 못한 시 세계만을 펼쳐 보이게 하였으며, 결국 그의 시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양승준, 양승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이해와 감상]> 

'시와 憧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받기위해,...  (0) 2007.04.14
인생,....  (0) 2007.04.14
내 마음 아실 이  (0) 2007.04.03
신동엽 부여 시비  (0) 2007.04.03
함동선 시인의 시  (0) 2007.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