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T.S 엘리어트(영국) - 황무지(荒蕪地)

cassia 2006. 4. 3. 01:23
T.S 엘리어트(영국) - 황무지(荒蕪地)

엘리어트는 1888년 미국에서 뉴잉글렌드 혈통을 지니고 태어났다.

1927년 영국인으로 귀화하고 영국정교 신도로 개종했고

1965년 영국에서 사망했다. 황무지의 발표와 더불어 엘리어트는 좋든 나쁘든

세계의 "현대시"를 지배해 왔다. 시 뿐만 아니라 그의 평론은 신비평을 생기게 했고

1960년대 중반까지 그의 이론은 대학가의 문학론을 압도했다.

이 작품은 정신적인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

生産이 없는 性, 그리고 재생이 거부된 죽음에 대한 詩이다.

서사시 황무지는 5부로 구성되었다. 그중 1부만을 이곳에 옮겨본다.

(참고 - 民音社 세계시인선 9, 1977)

 


 

황무지(荒蕪地)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요.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주)

로마신화에서 무녀 Sivil은 앞날을 점치는 힘을 지닌 여자다.

특히 로마의 식민 도시였던 이탈리아의 쿠마의 무녀는 유명했다.

그녀는 아폴로 신에게서 손안에 든 먼지 만큼 (황무지 30행 참조) 많은 햇수의

장수를 허용받았으나 그만큼 젊음도 달라는 청을 잊고 안했기 때문에

늙어 메말라들어 조롱 속에 들어가 아이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죽음보다도 못한 죽은 상태의 황무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보다 나은 예술가 (il maglor fabbro)"는 단테가 신곡 <연옥편> 26장에서 

12세기 이탈리아 시인  Arnaut Daniel을 찬양한 문구이다.

엘리어트 자신의 말을 빌리면 혼란한 상태에 있던 <황무지>의 초고를

에즈라 파운드가 절반의 길이로 고쳐주었다고 한다.

 

 

1부. 죽은 자의 매장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 (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슈타른 버거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柱廊)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 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톤 태공의 집에 머물렀을 때 설매를 태워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 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 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나오는가?
사람들이여, 너는 말하기 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곳엔 해가 쪼여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른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주리라
한 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恐怖)를 보여주리라
     <바람은 상쾌하게
      고향으로 불어요
      아일랜드의 님아  
      어디서 날 기다려 주나?>
"일년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야신스를 줬지요.
다들 저를 히야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 하지만 히야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한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게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보여
산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숙을 들여다 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
 
유명한 천리안 소소트리스 부인은
독감에 걸렸다. 하지만
영특한 카드를 한 벌 가지고
유럽에서 가장 슬기로운 여자로 알려져 있다.
이것 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여기 당신 패가 있어요. 익사한
페니키아 수부이군요.
(보세요, 그의 눈은 진주로 변했어요.)
이건 벨라돈나, 암석의 여인
수상한 여인이예요.
이건 지팡이 셋 짚은 사나이, 이건 바퀴
이건 눈 하나밖에 없는 상인
그리고 아무 것도 안 그린 이 패는
그가 짊어지고 가는 무엇인데
내가 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살당한 사내의 패가 안보이는 군요!
물에 빠져 죽는 걸 조심하세요.
수많은 삶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군요.
또 오세요. 에퀴톤 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를 직접 갖고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요새는 조심해야죠.
 
현실감이 없는 도시,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밑으로
한 떼의 사람들이 런던교 위로 흘러갔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마쳤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다
이따금 짧은 한숨들을 내쉬며
각자 발치만 내려 보면서
언덕을 너머 킹 윌리엄가를 내려가
성 메어리 울로스 성당이 죽은 소리로
드디어 아홉시를 알리는 곳으로.
거기서 나는 낯익은 자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
"스테츤 자네 밀라에 해전 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필까?
혹시 때 아닌 서리가 묘상(苗床)을 망쳤나?
오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페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참고)

마지막 부분은 보드레르의 <惡의 꽃> 서시 "독자에게"의  마지막 행을 엘리어트가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보들레르처럼 엘리어트도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어 적극적으로 시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는 시행이다.

 

 

 

 

 

 

[장영희의 영미시 봄산책 ⑩] 황무지

 [조선일보] The Waste Land (T. S. Eliot(1888-1965))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황무지 (T. S. 엘리엇)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으니.

다시 움트고 살아나야 하는 4월 ‘4월은 잔인한 달’--이맘때쯤 되면 으레 한두 번쯤

방송에서 듣는 말입니다. 유명한 〈황무지〉의 시작 부분이지요.

그러나 이 부분은 자주 인용되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흡족지 않은 4월의 경험을 토로하는

차원이 아니라, 계절의 순환 속에서 다시 봄이 되어 버거운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망각의 눈’에 싸인 겨울은 차라리 평화로웠지만

다시 움트고 살아나야 하는 4월은 그래서 잔인합니다.
대학시절 이 시를 처음 읽을 때는 정말 황무지 같은 세상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함께’의 삶이었고,

마음은 씨앗 하나만 심어도 금세 싹트는 푸른 벌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창한 봄이 되어도 생명이 자랄 수 없는 불모의 땅이 된

마음이 허허롭기 짝이 없습니다.

(장영희·서강대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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