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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琵瑟)산의 가을

cassia 2005. 11. 5. 05:22

비슬(琵瑟)산에 가보셨나요


비슬의 가을에 취하고, 바람에 취하고, 돌 향기에 취하다

 

▲ 단풍의 색감에 내마음은 바람이 난다.
ⓒ2005 이화영

나는 산에 오르길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관광이나 선진지 견학의 일정에 산을 오르는 프로그램이 끼어 있으면 무슨 핑계를 대든지 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어쩔 수 없이 가더라도 남들이 등반하는 동안 차에서 기다리거나 술을 좋아하는 몇 사람을 규합해 산 입구의 간이주점으로 스며 동동주와 도토리묵을 음미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선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했습니다. 가을이, 바람이, 돌 향기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어느 샌가 산에 묻혀있는 저를 발견하고 스스로도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속한 단체와 자매결연을 해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단체의 초청으로 대구광역시 달성군을 방문했을 때 숙소로 사용한 장소가 비슬산 자연휴양림 안에 있었습니다.

산을 안 좋아하는 걸 아는 동료들은 저를 남겨두고 등반을 시작했고, 저는 혼자 숙소에 남아 있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단풍의 자태가 너무 고와 저 녀석들이나 사냥해야겠다는 생각에 똑딱이 카메라를 챙겨들고 나섰습니다. 밖으로 나가 주위를 돌아보니 그곳을 고향으로 살아가는 다람쥐며 산토끼, 산새들이 목을 축일 법한 작은 옹달샘이 있었습니다.

▲ 옹달샘에 내려 앉은 낙엽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2005 이화영
그 옆으론 나지막한 위치에 공중전화가 보이더군요. 자연스레 발걸음이 옮겨졌습니다. 그 위쪽으로 돌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가 있었고 정성스레 쌓아올린 듯한 돌탑이 보였습니다. 산의 중간 중간에 돌무더기가 웅장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 토끼야! 아프면 이 전화로 119에 연락해
ⓒ2005 이화영
▲ 아직까지 강렬한 색감을 자랑하는 담쟁이(위), 대선후보의 지지도를 그래프로 보는듯(아래)
ⓒ2005 이화영
▲ 갈라진 돌 틈에서 자란 식물, 고사린가?
ⓒ2005 이화영
▲ 담쟁이도 곱게 물들고 있다.
ⓒ2005 이화영
안내판을 보니 이 산이 유명세를 타는 것은 돌무더기 때문이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돌등은 세 종류로 구분이 되는데 학술용어상 암괴류, 애추, 토르라 불린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암괴류는 빙하기에 형성됐으며 길이가 2km에 달하고 사면경사 15˚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쓰여 있었고 ‘애추도 암괴류와 비슷한 시기에 형성됐으며 암괴류는 둥근 반면 토르는 각이 진 바위들이 대부분이고 대견사지 부근의 톱(칼) 바위는 애추의 형성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지형자원’이라고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또 ‘대견사지 일대에 많이 분포한 토르는 형상에 따라 부처바위, 곰바위, 거북바위로 불리고 암괴류, 애추와 더불어 비슬산의 빼어난 경관을 이룬다’고 전하고 있었습니다.

▲ 길이가 2km에 달하는 암괴류(위), 정성스레 쌓아올린 돌탑들(아래)
ⓒ2005 이화영
▲ "오마이뉴스에 사진 실릴지도 모릅니다", "꼭 실어주세요"(왼쪽), 애추옆을 지나는 할머니
ⓒ2005 이화영
조금 더 오르다 할머니 두 분을 만났습니다. 가는 막대기를 지팡이삼아 오르면서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라는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기고 계시더군요. 농사일을 접을 시기가 되면 1년에 한번씩 이 산을 오른다고 말한 할머니가 상처 입은 나무를 가리키며 “불쌍한 나무 날 보는 것 같네”라며 “도토리 몇 알 줍겠다고 돌로 나무를 쳐서 저렇게 됐다”며 측은한 시선으로 나무를 응시하는 모습을 보고 아픈 사연이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쭙고 싶었지만 기억을 더듬다 아픔이 되살아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젊은 할아버지 좋은 추억 많이 담아가라”는 할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가을을 더듬으며 산에 오르는데 먼저 출발했던 일행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모여 있었습니다.

▲ 상처가 심한 나무, 보기에도 안스럽다.
ⓒ2005 이화영
동료중 한명이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아져 하산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모두 절 바라보았습니다. ‘산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여기까진 왜 왔으며 당연히 아픈 사람을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무언의 압력이 눈빛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번만큼은 정상까지 가리라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을 지척에 두고 그 희망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비슬산에서 담아온 가을 내음과 바람의 향기가 아직도 코끝을 감돌고 있습니다.

▲ 가을산행을 하고있는 등반객들
ⓒ2005 이화영
1. 비슬산 : 산의 모습이 거문고와 같고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의 모습이 마치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비슬산이라 했다고 함.

2. 찾아가는길
- 대중교통 이용시 : 대구↔현풍 : 대구 서부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직행버스 10분간격 대구시내 좌석버스 601번 : 토·일·공휴일만 운행(망우공원-범어로타리-반월당-두류네거리-서부정류장-화원-현풍-휴양림)
※ 평일은 현풍시외버스 정류장에서 택시이용
- 승용차 이용시 : 대구에서 현풍방면 국도5호선 또는 구마고속도로 이용

3. 편의시설(비슬산자연휴양림)
- 숙박시설
• 통나무집 10동, 사계절 산막(콘도형) 2동 13실, 야영데크 및 데크 34개소, 단체막사(청소년수련장) 1동 2실
※ 통나무집, 사계절 산막 이용시 사전예약 필요
- 주차시설
• 공영주차장 : 무료(소형차 기준 800대)
• 사설주차장 : 소형 - 2,000원(1일 기준), 대형 - 5,000원(1일 기준)

4. 주변환경
- 먹거리 : 비슬산 입구에 건강식품, 전통보리밥 식당이 산재해 있으며 현풍할매곰탕, 유가지역의 닭, 오리요리가 전문
- 산 입구에 찜질방 시설도 이용할 수 있음./ 오마이뉴스에서

 

슬픈 계절에 만나요 / 백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