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사랑

욕심없는 꽃, '방가지똥'

cassia 2005. 5. 8. 19:06
욕심없는 꽃, '방가지똥'
 

내게로 다가온 꽃들(48)
김민수(dach) 기자   
ⓒ2004 김민수
식물도감에 의하면 방가지똥은 5월에서 9월 사이에 피는 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의 방가지똥은 한 겨울에도 양지바른 돌담에 기대어 올망졸망 노란 꽃을 피고지길 반복합니다. 물론 추위로 인해 이파리와 족히 1미터는 돼 보이는 꽃대를 거의 땅에 붙이고 있지만, 꽃이 흔하지 않은 겨울에 만날 수 있는 꽃이니 반갑기만 합니다.

ⓒ2004 김민수
황대권씨는 저서 <야생초 편지> 중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방가지똥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매일같이 운동장에 나가지만 이놈이 꽃을 활짝 피운 것을 본 일이 없다. 작년에 흐린 날씨가 며칠 계속될 때 처음 본 이래로 말이야.<야생초 편지 p.112>

그러나 방가지똥은 꽃을 피우기만 하면 겨울에도 어느새 씨앗을 날려 싹을 내기 때문에 내 작은 텃밭의 돌담, 그 중에서도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곳은 언제나 방가지똥의 차지였습니다. 덕분에 방가지똥을 잘 관찰할 수 있었죠.

ⓒ2004 김민수
황씨가 관찰한대로 햇살이 뜨거운 여름에는 아침 일찍 잠시 피었다가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에 꽃을 닫아버립니다. 그러나 흐린 날에는 그보다 늦게까지 활짝 피어있습니다.

그런데 추운 겨울에는 어떤지 아세요? 한 번 화들짝 피면 하루종일 함박웃음을 짓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답니다. 아니, 꽃을 닫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밤새 별님과 달님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기서 잠시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햇살이 강렬한 여름에는 잠시 피었다가도 흐린 날이면 좀 더 오래 피어있고, 겨울에는 종일 피어있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밤에도 꽃을 피웁니다. 방가지똥은 햇살로부터 필요한 만큼의 영양분(광합성작용)을 꽃과 이파리를 통해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즉, 날씨가 좋고 따스한 여름에는 아침에 잠시 피어도 충분한 영양분을 얻을 수 있지만, 흐린 날은 아무래도 그보다 좀 더 피어있어야 영양분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지요. 또 해가 짧은 겨울에는 종일 피어있어도 추위를 견딜만한 영양분을 채우기 부족하니 밤에도 꽃을 피우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2004 김민수
풍족할 때에도 필요한 것 이상을 갖지 않는 방가지똥의 마음을 봅니다. 부족함으로 인해 꽃을 피우지 못할지언정 풍족하다고 마냥 소유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늘 빈곤하게 살아가는데, 꽃은 쌓아두지 않으면서도 부유하게 살아갑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방가지똥을 바라보니 그 줄기가 왜 비어있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텅 빈 줄기, 텅 빈 충만의 연결점이 보이지 않나요?

ⓒ2004 김민수
방가지똥의 줄기는 비어있고, 줄기를 꺾으면 젖과 같은 흰 진이 나옵니다. 씁쓸하지만 어린 순을 나물로 먹으면 씀바귀나 고들빼기의 맛과 거의 비슷하니, 이것들과 그 성질도 비슷하다면 분명 몸에도 유익할 것입니다. 쓴나물은 입맛을 되찾아 줍니다. 쓴나물만 보면 '쓰고 괴로운 것이 다하고 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의 고사성어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쓴나물을 먹으면 밋밋하기만 하던 밥맛이 꿀맛이 되니 잃어버렸던 입맛을 찾는데 그만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고난과 힘겨운 여정들을 보내고 나면 그저 밋밋하게만 느껴졌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죠.

ⓒ2004 김민수
방가지똥의 생명력은 민들레 못지 않습니다. 씨앗과 뿌리로 번식을 하는데 꽃이 좋아서 겨우내 텃밭에서 꽃을 피우고 있던 놈을 하나 두었더니 요즘 텃밭에서 제법 행세를 하고, 결국은 나와 씨름을 합니다. 검질을 할 때마다 수없이 많은 명상의 소재들이 떠오릅니다.

흙과 풀을 만지고 그들의 냄새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하는 명상은 책상에 앉아서 하는 명상과는 다른 맛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책상에 앉아 이론적으로 알았던 것들이 확인되는 순간도 있고, 더욱 구체화시켜주고 깊어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2004 김민수
검질을 하되 그들을 아예 없앨 생각으로 하지 않습니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밭이기에 물론 제초제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검질을 잘 해도 늘 남아있기 마련입니다. 지금도 작은 텃밭에는 시금치, 근대, 아욱, 고추, 오이, 가지, 호박, 감자, 쓱갓, 상추, 보리콩, 완두콩, 마늘, 부추, 토란, 땅꽁, 파, 더덕, 방울토마토, 옥수수 등과 함께 광대나물, 개미자리, 괭이밥, 쇠별꽃, 점나도나물, 질겅이, 냉이, 개망초, 땅채송화, 방가지똥, 민들레 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너무 우거져서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정도만 검질을 하면 텃밭도 수수한 꽃밭이 됩니다.

ⓒ2004 김민수
방가지똥의 이파리는 언뜻 보면 가시엉겅퀴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미끈한 촉감에 가시보다는 불규칙한 톱니형의 이파리를 가지고 있으니, 거칠고 따가운 가시를 가진 가시엉겅퀴와는 확연히 구분됩니다. 그러나 가시가 아니더라도 이파리가 억세 지면 가시처럼 콕콕 찌르니 함부로 만질 수 없는 꽃입니다. 더군다나 화형은 또 얼마나 촘촘한지 오밀조밀 빈틈없이 꽉 채워져 단단하기까지 합니다.

ⓒ2004 김민수
씨앗의 모양은 여인네들이 분화장을 할 때 사용하던 것과 흡사한 모양입니다. 품고 있던 씨앗들을 바람에 실어 날려보내 놓고 끊임없이 또 다른 꽃을 피워내는 방가지똥. 그 이름 뒤에 붙은 불경스러운(?) 말이 오히려 정겨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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