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사랑

소나무

cassia 2005. 5. 8. 18:41

길손의 다리쉼에 알맞춤한 고갯마루의 소나무

 

서울로 가는 길목에서 입석마을의 길흉화복을 지켜준 성황당 나무
미디어다음 / 글, 사진=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고갯길을 오르다 꼭대기에 이르러 다리쉼을 하고 싶은 곳에 우뚝 서있는 입석 마을 성황당 나무. 천연기념물 제383호.
나무 답사와 관련해 가장 매력적인 곳 가운데 한 곳이 바로 충북 괴산입니다. 나무와 관련한 천연기념물이 8건이나 지정돼 있는데, 이는 아마 우리나라의 지자체 가운데에는 가장 풍성한 규모 아닌가 싶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나무인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가 모두 포함돼 있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특산종인 미선나무 자생지까지 갖추고 있으니, 나무 답사로는 더없이 풍성한 곳입니다.

오가리 느티나무와의 편안한 만남에 이어, 천연기념물 제383호인 ‘연풍 입석의 소나무’를 찾았습니다. 지난 해 가을 이 나무를 찾았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서 나무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어요.

입석의 소나무가 서있는 입석마을의 서낭당 고개까지 오르는 길 양옆으로 펼쳐진 넓은 밭에서는 농부들의 일손이 분주합니다.
마침 지나는 마을 젊은이에게 물으니, 고갯마루에 있는데, 자동차로 올라가기는 어렵고, 걸어서 올라가면, 30분은 족히 걸린다고 하더군요. 넉넉한 만남을 위해서는 이른 시간에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렸었지요.

‘연풍 입석의 소나무’가 있는 곳은 연풍면 적석리 입석마을 고갯마루입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나무까지 오르는 비탈 길 앙옆으로는 웅기중기 마을 밭이 이어져 있습니다. 밭에는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일손이 분주합니다. 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 오르는 길은 한가로워 좋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알려준 고갯마루 쪽으로는 10여 그루의 소나무들이 모여 자라고 있는 작은 솔숲이 있습니다. ‘연풍 입석의 소나무’는 그 솔숲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아늑하게 형성된 솔숲을 지나자 나무가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냅니다.

곧은 줄기에 사방으로 고르게 펼친 가지가 마치 속리산 정이품송의 기개를 닮은 입석의 소나무.
‘연풍 입석의 소나무’는 키가 17m나 되는 큰 나무로, 4백 여 년 전 이 곳에 마을이 형성되기 전부터 마을의 길흉화복을 지켜준 수호신과 같은 나무이지요.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성황당나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났던 1950년까지만 해도 나무 곁에는 당제를 지내는 당집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습니다. 입석 고개는 영남에서 문경새재나 이화령을 넘어 서울로 가는 길목입니다. 지금이야 다른 편리한 길들이 많이 나있지만, 엣날에는 이 길이 서울로 가는 외길이었다고 합니다. 이 길에서 길손들이 길을 멈추고 쉬어넘던 곳이 바로 나무가 있는 곳입니다.

하늘가에 닿을 듯, 꿋꿋하게 땅을 박차고 솟아오른 나무의 굵은 줄기.
고갯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지만, 나무가 있는 고갯마루에 이르면 누구나 한번 쯤 다리쉼을 하고 싶어질 겁니다. 게다가 가지를 넓게 펼친 큰 소나무가 떡허니 버티고 서있으니, 나무 아래는 그야말로 다리쉼을 하기에 꼭 알맞춤한 곳입니다.

나무는 곧은 줄기가 똑바로 솟아올랐고, 그 중심 줄기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고르게 잘 펼쳤습니다. 휘고 굽은 여느 소나무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곧은 줄기에 고르게 펼쳐진 가지들은 마치 속리산 정이품송과 닮았습니다. 특히 서쪽에서 바라다보이는 모습은 정이품송과 빼어닮았습니다.

다만 줄기 끝에서는 약간 비스듬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벼슬을 내리고도 남을 만큼 도도한 나무의 품새는 가히 감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특히 고갯마루에 우뚝 서있어서, 실제보다 훨씬 커 보이는 모양으로 융융하게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씩씩한 기상의, 바로 우리의 소나무라 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