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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 다가온 꽃들(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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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dach)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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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호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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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온 가족이
함께 들꽃을 찾아 여행을 떠날 때면 참 행복합니다. 물론 여행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지도 모릅니다. 집 근처의 오름을 산책하며 꽃에 관심을 두면
들꽃 기행이요, 나무에 관심을 두면 나무 기행, 곤충에 관심을 주면 곤충 기행이기 때문입니다.
제주시에 일이 있어 나갈 때마다
아이들은 좀 더 편안한 일주도로로 가자고 하지만 저는 꼭 중산간도로를 택합니다. 일단 신호등이 적고, 계절따라 변하는 나무들과 오름의 풍경을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거든요. 게다가 잠시 쉬었다 가자며 가족을 이끌고 숲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아기자기한 자연의 모습도 만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넓게 포장된 일주도로보다 구불구불 이차선 도로지만 중산간도로가 더 정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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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온 가족이
함께 아름다운 꽃 '현호색'을 만났던 날. 이리저리 꽃을 보던 막내가 한 마디 합니다.
"아빠,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거다." "어디서 봤지? 아빠가 찍은 사진에서 봤나?" "아니, 냉장고에서 본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감이
오질 않았습니다. 지난 해부터 현호색에 빠지긴 했지만 캔 적도 없는데 느닷없이 냉장고에서 현호색을 봤다니요. 무슨 말인가
궁금했습니다.
"아빠, 맞다, 맞어. 멸치다 멸치!"
온 가족이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에 조용하던 숲 속이
들썩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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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정말
그렇습니다. 현호색의 모양새는 마치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입을 크게 벌리고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듯합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마른 멸치를
보는 것도 같습니다. 현호색의 속명 'Corydalis'는 '종달새'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꽃 모양이 종달새 머리의 깃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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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윤동주 시인의 <종달새>라는 시가 있습니다.
종달새는 이른 봄날 질디진 거리의 뒷골목이 싫더라 명랑한 봄 하늘, 가벼운 두 나래를
펴서 요염한 봄 노래가 좋더라 그러나, 오늘도 구멍 뚫린 구두를 끌고 훌렁훌렁 뒷거리 길로 고기 새끼 같은
나는 헤매나니 나래와 노래가 없음인가 가슴이 답답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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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암울한
조국의 현실, 질디 진 거리의 뒷골목 같은 현실에서 명랑한 봄 하늘을 소망하는 노래입니다. '종달새'와 관련된 속명을 가져서일까요. 현호색은
명랑한 봄 하늘을 나는 종달새처럼, 요염한 봄 노래를 불러주는 종달새처럼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요즘 한창이긴 하지만 현호색은 한라산
기슭에 잔설이 남아있을 때부터 양지바른 곳에서 하나 둘 피어납니다. 작디 작은 이파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듯하다 어느 봄날 음악회라도 열듯이
여기저기에서 피어오릅니다. 각양각색의 현호색을 직접 보면 반하지 않을 분이 없을 겁니다. 저는 제주에 와서 들꽃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
아름다운 현호색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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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현호색은
때가 되면 지천에 피어나 하늘거리는데 왜 할미꽃이나 민들레, 개나리 같은 꽃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다른 식물들은 꽃이 지고 나면 열매도
맺고, 이파리도 가지고 있다가 겨울이 되면 사라집니다. 하지만 현호색은 꽃을 피운 후 한달여가 지나면 흔적도 없이 땅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마치 죽은 듯이 말입니다. 잠시 잠깐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가기 때문에 사람들과 친숙하게 지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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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현호색이
한창 피어날 즈음이면 또 다른 꽃이 가장 화사했던 시간들을 마무리합니다. 복수초가 바로 그것입니다. 역시 복수초도 어느 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꽃입니다. 그래서 이미 죽은 줄 알고 화분을 버렸는데 이듬해 봄에 버려진 그 화분에서 복수초가 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아마
현호색도 그렇겠지요.
이 둘의 공통점은 참 부지런히 피었다 부지런히 지는 꽃이라는 점입니다. 복수초도 그렇고 현호색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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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현호색의
뿌리는 덩이줄기입니다. 그 덩이줄기는 생명력이 무척 강하다고 합니다. 달래보다 조금 더 큰 덩이줄기는 약재로 사용됩니다. 특히 진통 효과가
뛰어나 두통이나 치통 등에 진통제로 사용이 되고, 혈액 순환도 도와준다고 합니다.
저는 현호색이 심통(心痛) 즉, 마음의
고통까지도 다스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아름다움의 묘미 때문에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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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지난 해
어느 분이 화분에 잘 심어진 새우란 한촉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새우란은 올해도 예쁜 꽃이 피웠습니다. 그런데 그 새우란보다 저를 더 흥분시킨
것은 새우란 곁에서 현호색이 작은 새싹을 내며 피어오른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씨앗이 날아온 것 같은데 내년에는 현호색을 집에서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어떤 색의 꽃을 피울지도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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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파스텔
톤의 예쁜 현호색. 그들을 바라보며 온 가족이 함께 현호색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답니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되었을 때에도 온 가족이 함께 들꽃을 보며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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