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누리

숲에 사는 즐거움

cassia 2005. 4. 23. 08:00

숲에 사는 즐거움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사이언스북스 펴냄

 

"여기 내 언덕에서는 주위에 흥미로운 일들이 널려 있다. 나는 무엇을 보게 될지, 어떤 생각이 떠오를지를 미리 알 수 없고 다른 학자들의 어떤 생각과 관찰을 통해 내가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것을 궁금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바로 여기에 나를 평생토록 사로잡을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연과 생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미국 버몬트 주립대와 버클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박각시나방의 체온 조절 메커니즘, 벌들의 생체 에너지 조절 메커니즘 등을 해명, 미국 생물학계의 거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책은 학자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사람을 자연과학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일반 독자들에게 알리는 데에 더 관심이 있다. 내가 다른 학술적 저술에서 남겨 두어야만 했던 것들, 즉 내가 들은 온갖 소리와 내가 본 광경들, 끝없는 잡일과 행복한 순간들, 몰입과 경이로움과 같은 과학에 관한 느낌을 여기에서 그려 냈으면 한다."

저자는 '글을 시작하며'에서 밝힌 것처럼 눈높이를 일반인들에게 맞춰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 폭격이 난무하는 와중에서도 개나리의 아름다움에 취해 가지를 꺾으려 했던 소년이 숲 속 자연과 생명의 신비에 매료되어 과학자가 되어 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학교 정규 교육이 싫어 숲 속으로 도망친 소년을 과학자로 이끈 것은 상아탑 안에서 이루어지는 고상한 연구가 아니라 숲으로 대표되는 자연의 경이로움이었다는 것.  

고향 보로보케(현재 폴란드 바트 폴진)에서 소련군의 진주에 쫓겨나 졸지에 피란민으로 전락한 뒤 독일 한하이데 숲에서 버섯, 새알, 죽은 동물의 사체 등을 채집하며 살아야 했던 어려운 시절에도 나방, 푸른박새, 까마귀 등을 관찰하며 자연 관찰의 즐거움을 만끽했다는 이야기가 책 첫 머리에 담겨 있다. 가족과 함께 미국 이민 후 메인 주에 정착해 살면서 만난 새로운 동식물과 탐조 여행을 떠난 부모님을 따라 탕가니카(현재 탄자니아)에서 박제용 새를 잡은 일화도 소개되어 있다.  

또 박각시나방 체온 조절 메커니즘에 관한 박사 학위 연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으며 영벌의 체온 조절 연구에 몰입하게 된 계기, 먹이에서 얻은 에너지를 자본가처럼 활동과 저축에 적절하게 분배하는 벌 이야기, 아프리카 쇠똥구리들의 흥미로운 삶과 물맴이 군집의 독특한 성질도 다루고 있다.

이와함께 나방 혹은 나비의 애벌레인 털벌레들의 특이한 섭식 형태, 모래밭에 함정을 파놓고 그 곳에 빠질 곤충을 기다리는 명주잠자리 애벌레, 흰머리말벌과 점박이땅벌의 생활사, 겨울 추위에도 끄떡없이 밤하늘을 누비는 나방들의 분투, 미국 메인 주 숲 속 통나무집 주위에서 벌어지는 동물들과의 삶 등 자연이 주는 신비로움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생물학자로서의 준엄한 질타도 빼 놓지 않고 있다. "불행히도 야생에 대한 법을 만드는 대부분의 행정가들에게 모든 새는 다 똑같다. 그들은 세계를 흑백으로만 본다. 그러나 이 세계는 수많은 음영과 다채로운 색으로 구성된 총천연색이다."

저자에게 환경 관련 법이나 정책은 독성 화학 물질이 가까운 동네가 아니라 멀리 있는 동네로 흘러가도록 하는 근시안적 규정에 불과하다. 천성산 터널 공사 문제와 새만금 사업 문제에서 볼 수 있듯이 개발중심주의적 정책이 논쟁과 분열을 불러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는 현실에서 생명 세계에 대한 진정한 앎을 통해 자연에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는 저자의 충고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372쪽, 1만5천 원.

 

이경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