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磬 小理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5> 드뷔시의 ‘달빛’

cassia 2022. 10. 23. 10:47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5> 드뷔시의 ‘달빛’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5> 드뷔시의 ‘달빛’

서영처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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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1862~1934)는 피아노 고유의 음 울림을 가장 새롭게 창조한 작곡가라 할 수 있다. 피아노곡 '달빛'은 '베르가마스크 모음곡'(1905)의 제3곡으로, 이탈리아 베르가모 지방의 풍광과 그곳의 가면 축제에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 이 축제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1844~1896)이 '달빛'이라는 제목으로 시집 '화려한 축제'에 수록해 발표하면서 인상파 음악가 드뷔시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쳤다.

 

"그대의 영혼은 선택된 하나의 풍경/ 그곳에선 매력적인 가면을 쓴 베르가마스크 행렬이/ 류트를 켜고 춤추며 지나가네/ 환상적으로 변장한 모습 속에 슬픈 표정을 하고/ 의기양양한 사랑과 때를 맞은 인생을/ 단조로 노래하면서도/ 그들은 저들 행복을 믿지 않는 것 같고/ 노래는 달빛에 섞이네."

 

떠들썩하고 화려한 삶 뒤의 우수를 담은 베를렌의 시는 암시적인 운율과 뉘앙스로 드뷔시에게 깊게 각인되었다. 드뷔시는 베를렌의 시가 가지는 고유의 음악적 울림을 이미 가곡 '달빛'(1882)으로 작곡해 발표했지만 언어의 제한성을 벗어나 피아노의 감각적인 음향과 자유로운 형식을 통해 더욱 신비롭고 풍요로운 분위기로 표현하고자 했다. 피아노곡 '달빛'은 베를렌의 모호한 감성처럼 화성의 기능이 해체된 음악을 통해 내면의 미묘한 움직임과 시적 환상을 들려준다. 또 발단-전개-절정 같은 유기적 구조를 나타내지도 않는다. 단지 출렁거리는 달빛의 불명확하고 몽환적인 상태를 통해 달밤의 색채를 보다 효과적으로 펼치며 달빛이 비추는 밤의 풍경을 깊이 있는 환상으로 채워준다. '달빛'은 널리 알려진 유명한 곡이다. 그만큼 작곡가의 개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곡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달빛'은 인상주의 음악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표적인 음악으로 꼽힌다.

 

달은 생명을 주고 만물을 풍요롭게 하지만 불길하고 음산한 이미지를 지닌다. 태양이 높은 곳, 열기, 남성성, 능동성을 보인다면 달은 낮은 곳, 차가움, 여성성을 나타내며 무의식의 본질을 드러낸다. 달이 차고 기울 듯 여성의 몸은 달의 공전주기에 따라 변화한다. 그래서 달을 주제를 삼은 음악은 표면적이든 아니든 여성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알프스의 남단,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베르가모를 여행한 적이 있다. 밀라노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리면 조용한 도시 베르가모가 나타난다. 현재 베르가모는 공업도시이지만, 푸니쿨라를 타고 언덕으로 올라가면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구도시를 만날 수 있다. 외세의 침입을 거의 받지 않아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성곽에서 롬바르디아의 넓은 평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구도심 곳곳에서는 로마네스크, 르네상스, 고딕 등 다양한 시대의 성당과 궁전, 광장과 분수대가 여행자를 유혹한다.

 

베를렌의 시 '달빛'은 가브리엘 포레도 가곡(1887)으로 만들었고 그의 대표 작품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소도시 베르가모의 축제는 베를렌과 드뷔시, 포레의 섬세한 프랑스적 감성에 실려 달빛에 바랜 여러 폭의 전설이 되었다.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https://youtu.be/n2sjvLnTcIg

문화부 jebo@imaeil.com

매일신문 입력 2022-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