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김경후, 「입술」

cassia 2020. 10. 8. 15:38

김경후,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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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후 ┃「입술」을 배달하며

 

나는 하지 않은 말로 인한 괴로움보다는 내가 한 말의 괴로움에 더 자주 시달린다. 정확하게 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말이 놓이는 상황과 관계를 두루 헤아리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말은 관계이므로, 말을 헤아리는 것은 관계를 헤아리는 것이다. 생각이 깊어지면 말은 줄어든다. 제 내면의 동굴 속으로 아주 깊어진다면 면벽 수행(面壁修行) 중인 수도승의 것과 같은 마른 입술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를 향해 깊어지고 깊어진다면, 그 “입술은 온몸의 피가 몰린 절벽”, “백만겹 주름진 절벽”과 같을 것이다. 아름다운 입술이다. 하지 못한 말의 괴로움이 극한에서 도달한 절경처럼 아름다운 이미지다. 그러나 이 절벽에서도 뛰쳐나오는 “네게 가는 말들로 백만겹 주름진 지느러미”를 나는 막을 수 없으며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네게 가는 나의 말들”이 “네게 닿지 못한 말들”일지라도, “백만겹 주름”진 영혼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문학집배원 시인 김행숙 2020.10.8 (목)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작가 : 김경후

출전 :『오르간, 파이프, 선인장』(창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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