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송찬호, 「눈사람」

cassia 2020. 4. 16. 13:48

 송찬호, 「눈사람」


https://youtu.be/_Gr-IOqL_W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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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 「눈사람」을 배달하며


한여름 밤, 열차는 자정을 향해 끝없이 달리고 있었다. 내 옆자리 창가에는 털모자를 쓰고 목도리까지 두른 겨울 눈사람이 앉아 있었다. 찌는 듯한 여름이었는데, 눈사람은 엄혹한 겨울의 감옥에 갇힌 채 어느 계절로도 흘러가지 않았다. 겨울전쟁에서 패하고 그는 생의 그 어떤 변전(變轉) 가능성도 몽땅 몰수당하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는 겨울의 얼얼한 마비상태에서 도무지 깰 수가 없다. 그는 겨우 견디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지난겨울의 악몽을 깨워 한여름 밤의 현재로 그를 옮겨놓으면, 간신히 붙들고 있는 존재의 형상마저 세계의 커다란 입에 삼켜져 용해되어버릴 것만 같다. 우리는 서로를 지키느라 이 무거운 침묵을 깰 수도 없었다.
     밤의 창문에서 나는 이따금 겨울전쟁에서 다친 그 눈사람을 다시 만난다. 검은 거울은 그렇게 그를 내게로 돌려보낸다. 나는 떠올린다. 자정을 향해 끝없이 달리는 생의 열차에서 우리가 나란히 앉아 서로의 옆을 지켰던 어느 한여름 밤의 꿈을…….


문학집배원 시인 김행숙 2020-04-16 (thu)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작가 : 송찬호

출전 :『분홍 나막신』, 문학과지성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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