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106) 김동인의 ‘배따라기 ‘와 공동체의 기억

cassia 2018. 4. 14. 15:48



(106) 김동인의 ‘배따라기‘와 공동체의 기억

 

삼월 삼짇날은 강남 간 제비가 돌아온다는 날이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최소 2주간의 날씨를 미리 알 수 있고, 겨울에 다음 해 여름의 더위까지 예측되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어느 누구도 제비의 출현으로 계절을 읽지는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제비가 강남을 갔는지, 어디를 갔는지에 대해서는 물론 계절의 흐름이나 자연의 미세한 변화에 대해서 관심이 별로 없다. 그러나 강남 간 제비가 돌아오는 것에서 봄의 시작을 읽고, 봄을 만끽하기 위해 진달래 화전을 부쳐서 서로 나누어 먹던 시대가 있었다. 김동인의 ‘배따라기’(1921)는 그 시대에 대한 애절한 기억이다.

소설은 대동강 봄 풍경을 즐기고 있던 ‘나’가 우연히 평안도 민요인 영유 배따라기를 구슬프게 뽑아내는 한 남자를 만나 그의 슬픈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작된다. 화자 ‘나’의 입을 통해 서술되는 남자의 사연은 절절하다. 남자는 헛된 질투로 인해서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물론 동생마저 가족과 고향을 등진 채 떠돌게 만든 인물이다. 그래서 그 죄책감으로 이십 년째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방랑하고 있는 중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자는 치유되지 않는 고통 때문에, 상처를 준 자는 죄책감 때문에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길 위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기생의 노래와 조선 아악이 펼쳐지는 삼월 삼짇날 대동강 봄 풍경을 바라보는 화자 ‘나’, 그리고 정착하지 못한 채 이십 년째 방랑하고 있는 남자. 이 두 사람은 전통적 시간과 공동체의 기억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화자인 ‘나’가 제 아무리 삼월 삼짇날 대동강 봄 풍경을 즐기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봄은 수백 년을 전해져 내려온 전통적 세계의 봄과는 다른 봄이다. 개화기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이르면서 태양력이라는 새로운 역법 체계가 도입되어 예전과는 다른 시간 체계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 다른 시간 체계가 시작되면서 음력 중심의 조선의 전통적 세시 풍속은 물론 기생의 노래나 아악과 같은 전통문화 역시 몰락을 겪게 된다. 소설 시작 부분, 화자 ‘나’가 삼월 삼짇날 대동강 봄 풍경을 그처럼 찬탄할 때 거기에는 사라져가는 수천 년 기억에 대한 애절함이 배어 있었다. 전통적 시간에서 소외된 ‘나’와 고향을 떠나온 남자, 두 사람은 다른 듯하지만 공동체의 삶에서 소외되었다는 점에서 동일한 운명을 밟고 있었던 것이다.

삼월 삼짇, 오월 단오, 유월 유두날은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우리의 전통 명절이다. 오래전 사람들은 삼월 삼짇날에 화전을 먹고, 오월 단오날에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유월 유두날에 동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에 머리를 감으면서 수백,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온 공동체의 기억은 물론 사라진 무수한 사람들과 삶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의 삶이 수천 년을 내려온 공동체 전체의 삶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한 우리는 삶의 근본적 적막감에서 다소라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전통 명절의 의미는 어쩌면 여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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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경북북부연구원 연구이사 / 출처 : 매일신문 2018.04.14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