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98) 이광수의 ‘사랑인가’와 동성간의 사랑

cassia 2017. 12. 16. 11:56



이광수의 ‘사랑인가’와 동성간의 사랑

 


어머니가 여고에 다니던 1950년대 초,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S언니-S동생' 맺기가 유행이었다고 한다. S언니-S동생이란 선후배가 의자매를 맺고 알콩달콩 우애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고 SNS도 없던 시대였다. 그렇다고 카페나 편의점, 패스트푸드 음식점과 같은 다양한 만남의 공간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말린 은행잎을 넣은 낭만적 편지를 보내고, 먼 길을 걸어 집을 방문하는 것이 상대를 향한 깊은 애정의 표현이었다. 지금의 감성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시대의 소녀들은 동성을 향한 순결하고 순진무구한 사랑에 매혹되고 있었다. 이광수의 일본어 소설 '사랑인가(愛か)'(1909)는 또 다른 동성(同性) 간의 사랑인 소년 사이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사랑인가’는 조선 귀국을 하루 앞둔 일본 유학생 문길이 동급생 마사오의 하숙집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문길이 아름다운 마사오의 모습에 첫눈에 반한 이래, 이 두 사람은 서신 교환을 통해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상태이다. 마사오를 만나려고 서성대던 문길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마사오의 냉담함에 절망감을 느끼고는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난다. 사랑의 대상이 ‘동성'(同性)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 문길이 겪는 실연의 아픔은 이성 간의 실연만큼 절절하다. 실연에 절망한 나머지 철로에 누워 자살을 시도하는 문길의 행동은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한 열정적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 ‘사랑인가’를 발표한 1909년, 이광수는 열여덟 살이었으며 일본 유학 중이었다. 이 시기 일본에서는 동성(同性) 간의 사랑이 하나의 문화로서 유행하고 있었다. 미소년에 대한 동경이나, 소년애가 일반적인 감정으로 수용되는가 하면 남자 중학교를 중심으로 소년 간의 사랑을 그린 소설이 다수 발표되었다. 명민하고 감수성 강한 식민지 청년 이광수가 당시 일본 사회에 성행하던 이 독특한 문화적 현상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보수적이며 전근대적 조선에서 온 겨우 열여덟 살의 식민지 청년 이광수가 근대 일본 성립 과정에서 파생된 독특한 문화 현상인 '소년애'(少年愛)의 깊은 맥락을 이해할 리도 없었다. 그냥 근대적 일본 사회의 유행에 발맞추고 ‘사랑’의 낭만적 감정에 취할 뿐이었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우리의 근대이고 우리의 근대문학이었다.

최근 중학생을 대상으로 ‘성 권리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가 친구가 동성애자여도 평소처럼 지낼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 중학생들이 백 년 전 이광수처럼 낭만적 환영에 취해서 동성애를 인정한 것도, 우리 사회가 백 년 전 일본 사회처럼 동성애를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수용한 것도 아니다. 지난 백 년 동안 우리 사회는 다양한 과학적 지식을 섭렵했고 소수자 인권을 인정하는 여유와 배려의 마음을 배웠다. 동성애가 병이 아니라 타고난 성적 지향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과학 연구를 통해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 우리 중학생들의 ‘성 권리 인식’ 조사 결과는 바로 이와 같은 우리 사회 변화의 결과일 것이다. ......(사진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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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대학교 기초교육대학 초빙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7.12.16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