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 (93) 김동인 ‘감자 ‘와 복녀 이야기

cassia 2017. 9. 30. 09:19



김동인 ‘감자 ‘와 복녀 이야기

 


우리 근대문학에서 매춘을 소재로 한 최초의 소설은 무엇일까. 대략 김동인의 '감자'(1925)가 거론되겠지만, 누구도 '감자'를 매춘소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매춘소설이라는 불경스러운 명칭 대신 '감자'는 우리 문학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이라는 멋진 명칭을 지니고 있다. 1970, 80년대 한국에서 중등교육 과정을 거친 사람이라면 대부분 '감자'와 자연주의를 한 묶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주의라는 관념적인 단어에서 벗어나는 순간 '감자'를 이해할 수 있는 수만 가지의 새로운 길이 우리 앞에 열린다.

'감자'는 스무 살 연상의 홀아비에게 팔십원에 팔려간 복녀의 몰락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윤리의식을 마음에 익히고 있던 정직한 농사꾼의 딸 복녀는 무능하고 게으른 남편 탓에 칠성문 밖으로 밀려나 마침내 매음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복녀와 남편이 가난 때문에 밀리고 밀려 정착하게 되는 칠성문은 어떤 곳이었을까.

1925년 평양역에서 을밀대, 부벽루, 청류벽 등 경승지가 모여 있는 대동강 상류지역으로 간다고 가정해보자. 평양역에 내리는 순간 우체국, 학교, 병원 등 근대적으로 멋지게 정비된 일본인 거주지인 신(新)시가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 상쾌함도 잠시, 일본인이 거주하는 신시가지를 넘어서면 곧 조선인이 거주하는 낙후된 구(舊)시가지에 들어선다. 정비되지 않은 도로, 전근대적 가옥, 곳곳에 쌓인 분뇨 등 비위생적인 구시가지를 지나 인적 없는 농지를 계속 걷다 보면 일본 신사가 위치한 칠성문, 칠성문을 넘어서면 노송으로 유명한 기자림, 기자림을 넘어서면 대동강 상류에 도착한다.

복녀 부부가 떠밀려 정착한 칠성문이란 정확하게 말해서 칠성문 밖에서 기자림에 이르는 도시 외곽 지역이다. 일제의 식민지 도시구획정리로 도시 중심부에서 쫓겨난 걸인과 부랑자 등 빈민층이 이 지역에 밀집해 있었다. 1925년을 전후한 시기 평양시에서는 이들 최하층 빈민을 위한 구제사업을 시행했는데 노송으로 유명한 기자림의 '송충이 잡기'가 그것이다. 복녀는 바로 이 '송충이 잡기' 사업에서 처음으로 매음을 하게 된다. 순진한 농사꾼의 딸 복녀의 몰락과정은 일제의 식민지 도시정비사업과 아주 묘하게 얽혀 있었던 것이다.

최근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 문학작품 이해지침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문학작품을 역사적으로 과잉되게 해석하거나, 단편적으로 분석하고, 암기 위주로 이해해왔던 우리나라 국어교육의 문제점이 인제 와서 터진 것이다. 성장과 효율을 최고 가치로 치부해온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문학작품 이해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문학작품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사조' 분석이나 주제 찾기가 아니다. 문학은 특정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는 그 기록을 읽으면서 시대와 사람을 이해하고 배운다. 특히 우리 근대문학의 발전과정이 식민지 시기라는 폭력적인 시대와 겹치는 만큼 거기에는 시대를 살아낸 많은 사람의 치열한 삶이 담겨 있다. 자연주의와 '감자'를 연관시키는 일은 복녀라는 인물이 살던 시대의 삶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나서 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이다. .................................(사진 :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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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대학교 기초교육대학 초빙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7.09.30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