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 (80) 조용만의 ‘여정’, 우리의 역사는 청산되었는가

cassia 2017. 4. 1. 17:43



조용만의 ‘여정’, 우리의 역사는 청산되었는가


어머니는 1934년생이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그해 소학교에 입학해서 열두 살 되던 5학년 때 해방을 맞았다. 히라이 요시코라는 일본식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학교에서 조선말 대신 일본말을 배웠다. 어머니 집안이 특별히 친일적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고, 창씨개명을 해야 했던 일제 말기 조선 사회의 현실 속에 어머니가 놓여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것은 어머니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강점기에 대한 어머니의 기억은 일상적이다. 옆집에 세 들어 있던 일본인 가족은 온순하고 성실했으며, 동네 조선인 모두 그들과 친하게 지냈다. 일본이 중국에 이어 미국과 전쟁을 시작하는 바람에 조선 사회 전체가 전쟁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지만, 소학교 학생이던 어머니가 일상생활에서 전시 체제를 느낄 일은 별로 없었다. 어머니와 친구들에게 전쟁에 대한 이해는 전쟁물자 조달을 위해 단체로 솔방울을 줍거나 풀 뽑기를 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의 모든 소녀가 어머니나 어머니 친구들이 겪은 그런 일상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삶이 그렇듯 일상의 평온한 흐름 속에서도 누군가는 날카로운 현실과 직면하고 있었다. 조용만의 ‘여정’(旅程`1941. 2.)은 일상의 한쪽 편에서 식민지의 혹독한 현실을 살아가는 조선 소녀들을 다룬 작품이다. 소설은 초년병 기자인 ‘나’가 중국 대련(大連)행 배 안에서 한 무리의 조선 소녀를 마주치면서 시작된다. 이 수많은 조선 소녀는 가난 때문에 돈에 팔려서 브로커를 따라 북지(北支), 즉 중일 전쟁이 한창이던 북중국 땅으로 가는 중이었다. ‘반도낭자군’이라는 기묘한 명칭을 지닌 이 소녀들의 여정의 마지막에는 전쟁에 지친 일본군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소녀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암울하다. 소녀 중 하나가 두고 온 동생을 그리워하며 울먹여도 ‘나’는 그냥 암울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등을 토닥여주는 것은 물론,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채 그냥 암울한 시선으로 그 소녀를 바라볼 뿐이다. ‘나’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먹이는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데서 소설은 끝이 난다. 전쟁으로 삭막해진 군인의 욕망해소용으로 만신창이가 될 그 꽃 같은 소녀들에게 잠깐의 위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특히나 ‘나’는 그 누이들을 제국의 남성들에게 무력하게 팔아넘긴 무력하고 무능한 오빠이지 않은가.

'2015년 한일위안부 협상 타결' 문제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조용만의 소설 속 '반도낭자군'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탓이리라. 참혹한 현실을 겪은 당사자가 이제 몇 사람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우리는 왜 그처럼 과거 역사에 매달리는 것일까. 그것은 단지 일본의 태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해방이 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치욕스러운 역사에 대해 냉철한 검증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아서 많은 문제가 자기정화 능력을 상실한 채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현재형으로 반복되기 때문일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검찰 출두와 재판을 앞두고 역사에 대한 반성과 청산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진 : '문장'-1941년 2월호에 게재된 조용만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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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미래대 산학협력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7.04.01 (토)

 





 

 

 

 

소설가ㆍ영문학자 조용만(趙容萬)

 

조용만(趙容萬.1909.3.10∼1995.2.16)

 

   소설가ㆍ영문학자. 호 아능(雅能). 서울 출생. 경성제일고보(京城第一高普)를 거쳐 1932년 경성제국대학 문학부 영문과 졸업. 이 무렵부터 창작에 전념, 희곡 <가보세>(1930.동광), 소설 <사랑(舍廊)과 행랑(行廊)>(1930.비판) 등을 발표했다.

 

   그 뒤 [매일신보] 문화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동광] [비판] [춘추] [문장] [인문평론] 등에 주로 소설을 발표하고, 1933년 [구인회(九人會)]의 동인으로 순수문학을 옹호했다.

 

   해방 후 [경향신문]을 거쳐 1950년 [코리아 타임즈]의 주필, 1953년 고려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의 소설 중 이상ㆍ이태준(李泰俊)ㆍ정지용(鄭芝溶)ㆍ박태원(朴泰遠)ㆍ염상섭 등의 문인들을 실명으로 등장시킨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있다.

 

   1995년 2월 16일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장지는 경기도 고양시 득은리 선영.


   소설가ㆍ영문학자. 서울 출생. 1932년 경성제국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 「비판」지에 단편소설 <사랑과 행랑>, [동광(東光)]지에 희곡 <가보세>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다.

 

   1933년 이상(李箱)ㆍ김유정(金裕貞) 등과 함께 경향문학에 반기를 들고 순수문학을 표방하는 [구인회(九人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매일신보] 기자, 1950년 [코리아 타임스] 주필을 거쳐 1953년부터 만년까지 고려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문필활동을 했다.

 

   그의 경력으로 보아서는 문단활동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은 입체적인 구성이나 본격적인 픽션보다는 담담한 스케치풍의 추억담 형식을 취하면서 서정(抒情)과 인생을 담고 있다.

 

【작품세계】

 

   인도차이나전쟁을 몰고 온 1937년 7월 중국의 전운(戰雲)은 이 땅에 있어서도 암흑기(暗黑期) 그대로였다. 1939년에는 동아일보ㆍ조선일보 양지(兩紙)가 폐간되었으며, 1941년 [문장]직사 폐간되었던 것이다.

   이 당시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아능(雅能) 조용만(趙容萬)은 <초종기(初終記)>를 [문장]지에 발표하였다. 그는 소설을 다루기 이전에 이미 [구인회(九人會)]의 멤버로서 극(劇) 분야에 손을 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구인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때로 말하면, 일본에서 나프라고 하는 좌익문예단체(左翼文藝團體)가 활발히 활동할 때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것의 영향을 받아서 ‘카프’라는 단체가 생겨 팔봉(八峰)ㆍ회월(懷月) 등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쪽에 가담한다든지 그런 색채를 띠지 않고서는 문사(文士) 행세를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항해서 일본에서는 [13인구락부]라는 단체가 생겨서 순수예술을 지켜왔다. 이럴 무렵이었다. [카프]에 대항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카프]는 너무 정치성을 띠었으니, 그런 정치성을 띠지 말고 순수예술을 지켜 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구락부(俱樂部) 형식의 무순 단체를 가져보자는 의논이 생겼다.

 

   색채나 경향은 뚜렷하지 않지만, 은연히 [카프]에 반대하여 순수예술을 옹호하자는 것이 회원들의 똑 같은 생각이었음을 물론이다.]

 

   그는 얼마 가지 않아서 유치진(柳致眞)과 더불어 [구인회(九人會)]를 탈퇴하고 말았다. [문장]지에 발표한 <초종기(初終記)>나 그 후 발표된 <여정(旅程)> 등도 [구인회] 멤버로 잇을 때 보여주었던 비정치적(非政治的) 냄새, 프로파간다적 제요소(諸要素)를 배격한 순수성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에 일관하고 있는 순수한 감각의 세계와 아름다운 추억의 꽃잎들은 인생의 맑은 여울을 꿈꾸게 해 주는 것이다. 누구는 그의 소설을 스케치풍(風)의 것이라고도 한다.

 

   1954년에 발표한 <지옥의 한 계절>도 역시 제목이 주는 심연(深淵)의 사색적(思索的) 세계의 전개보다 감상적(感傷的) 영상(映像)이 더 짙음이 사실이다. 1957년의 <삼막사(三幕寺)도 그런 부류에 속한은 것이다. 그는 또 그의 작품세계와는 약간 거리가 잇는 듯한 것이지만, 영문학자(英文學者)로, 소설가로, 극작가로 대채로운 역정(歷程)을 가졌던 것이다.   - 박동규(朴東奎) : <한국단편문학대계>(1969) 발췌 -

 

[경력】

 

▶1930  [비판]지에 단편소설 <사랑과 행랑>, [동광(東光)]지에 희곡 <가보세> 등을 발표하며 등단.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영어강사

▶1933  [구인회(九人會)] 조직

▶1933  [매일신보] 학예부장

▶1947  [경향신문] [코리아타임즈] 주필(∼1953)

▶1953  고려대학교 문리대학 영문과 교수(∼1974)

▶1974  덕성여자대학 교수

▶1995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95  2월 16일 별세

 

【소설】<초종기(初終記)>(문장.1940) <여정(旅程)>(1940) <북경(北京)의 기억(記憶)>(문장.1941.1) <만찬(晩餐)>(춘추.1941.7) <배 안에서>(국민문학.1942.7) <삼군 부처와 나와>(국민문학.1942.12) <지옥의 한 계절>(1954) <신곡(神曲)>(사상계.1957.1) <삼막사(三幕寺)>(사상계.1957.4) <서정가(抒情歌)>(사상계.1958.1) <바보>(자유문학.1958.5) <단층(斷層)>(지성.1958.9) <표정(表情)>(현대문학.1961.4) <속초행(束草行)>(사상계.1961.9) <복녀>(문학춘추.1964.9) <고향에 돌아와도>(창조.1967.10) <서귀포(西歸浦) 괴담(怪談)>(월간문학.1969.5) <삼청공원(三淸公園)에 나타난 두보(杜甫)>(신동아.1970.4) <초복날>(월간문학.1970.9) <좌석버스에서 생긴 일>(월간중앙.1971.1) <노염(老炎)>(월간중앙.1972.2) <전기(轉機)>(현대문학.1973.4) <암야(暗夜)>(문학사상.1975.12)

【소설집】<고향에 돌아와도>(동명사.1974) <구인회 만들 무렵>(정음사.1984) <북경의 기억> <만찬> <고향에 돌아와도>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창.1992)

 

【희곡】<별장>(1940) <카나리아>(문학예술.1957.11)

 

【수필】<멋의 미학(美學)>(세계.1960.5) <육당(六堂)의 풍모(風貌)>(현대문학.1962.12) <8월 괴담(怪談)>(신동아.1964.9) <아름다운 기억의 3월>(사상계.1966.3) <최승희(崔承喜)의 춤>(춤.1991.6)

 

【수필집】<방(房)의 숙명(宿命)>(삼중당.1962) <청빈의 서>(1969) <세월의 너울을 벗고>(1982)

 

【번역】<초상화(肖像畵)>(헉슬리.대조.1946.3) <애국자들>(킹슬러.우리공론.1947.4) <집없는 아이>(1958) <두시선역(杜詩選譯)>(고려대출판부.1986) <인간의 굴레> <포 단편소설>

 

【저서】<문학개론>(탐구당.1954)  <한국인의 멋>(삼중당.1963)  <육당 최남선 그의 생애ㆍ사상ㆍ업적>(삼중당.1964) <청빈(淸貧)의 서(書)>(교문사.1969) <일제하 문화운동사>(공저.민중서관.1970) <문학개론(文學槪論)>(고려대출판부.1972) <세계문학소사(世界文學小史)>(박영사.1974) <일제하 한국신문화운동사>(정음사.1974) <당시선(唐詩選)>(삼성문화재단.1976) <유럽의 인상>(탐구당.1981) <30년대의 문화예술인들>(범양사.1988) <울밑에 핀 봉선화야>(범양사.1985) <경성야화(京城野話)>(창.1992)

 

【친일평론】<근로봉사일지(조광.1941) <차 중에서 생긴 일>(동양지광.1942) <전국 현단계와 국민의 결의>(국민문학.1944) <도시 소개와 그 의의 신시대>(1944) <흑령탄갱의 감상 신시대>(1944)


[출처] 재봉틀의 국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