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한겨울 늦은 밤, 눈 덮인 압록강 국경 지대, 밀명을 띠고 조선으로 잠입하던 미모의 조선인 여성 비밀결사대원이 일본 경찰과 사투를 벌인다. 마침내 설원에 울려 퍼지는 한 발의 총성, 뒤이어 새하얀 눈밭을 붉은 피로 물들이는 경찰의 시신. 2015년 개봉해 1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암살’에나 나올 법한 이 장면이 1920년대 일본에서 발표된 소설의 첫 장면이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923년 일본에서 출판된 나카니시 이노스케(中西伊之助)의 소설 ‘너희들의 등 뒤에서’(汝等の背後より)는 바로 이 충격적인 장면에서 시작한다. ‘너희들의 등 뒤에서’는 권주영이라는 미모의 여성을 비롯한 조선인 비밀결사대원 3명의 혁명을 향한 의지와 비극적 죽음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변호사를 꿈꾸던 명민하고도 아름다운 여성이 왜 임신한 몸으로 육혈포를 든 비밀결사대원이 된 것일까. 소설은 권주영이라는 인물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 일본제국 장교를 사랑하지만 식민지 조선 여자이기 때문에 정조만 유린당한 채 버림받는가 하면, 일본인에게 성폭행까지 당하는 조선 여성 권주영의 참혹한 삶의 여정이 이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너희들의 등 뒤에서’의 여주인공 권주영의 비극적 삶은 그녀가 식민지 조선의 여성이라는 점에서 비롯되고 있다. 권주영이 꺼내 든 육혈포는 자신을 유린한 일본제국의 남성을 향한 것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식민지 조선을 유린한 일본제국을 향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국주의 시기, 제국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이 소설의 내용도 충격이지만, 나카니시 이노스케라는 일본인 작가가 일본제국의 중심부에서 이 소설을 발표했다는 것 역시 충격적이었다. 작가 나카니시 이노스케는 일본인이지만 노동자로 오랜 기간 떠도는 등, 일본제국의 주변부적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한일강제병탄 직후에는 조선으로 건너 와서 수년간 평양에 살면서 제국의 변방인 식민지 조선, 피정복지 조선의 현실을 직접 경험하기도 하였다.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 사람의 분노와 절망, 소외감을 스스로 삶을 통해 체득한 나카니시 이노스케가 조선의 현실에 공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관동대지진 직후 조선인 대학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조선 문화의 우수성을 거론하면서 조선에 대한 일본인의 몰지각한 이해수준을 ‘검은 공포의 환영’이라는 말로 비판하기도 했다. 나카니시 이노스케의 ‘너희들의 등 뒤에서’는 발표 직후 조선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조선의 한 유명 문인은 소설 여주인공 권주영을 위한 자작시를 짓고, 모든 조선인이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한국 내에서는 물론 일본에서도 ‘너희들의 등 뒤에서’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나오고 있다. 나카니시 이노스케가 조선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내걸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조선 여성이 제국의 위안부로 보이도록 만들었으며, 식민지 조선인이 겪은 민족 문제에 대한 의식이 극히 희박했다는 것이다. 100여 년이 지난 뒤에 나오는 ‘너희들의 등 뒤에서’에 대한 평가가 이처럼 다양하듯, 제국과 식민지 역사에 대한 평가 역시 그와 같을 것이다. 역사란 복잡다단한 심리를 지닌 인간이 만든 복잡다단한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 관련자들이 박근혜정부 역점사업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업에도 손을 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복잡다단한 인간의 역사를 하나의 관점으로 해석하려 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하나의 고정된 잣대로 역사를 재단하려는 순간, 역사는 더 이상 살아 숨 쉬는 과거의 현실이 아니라 생명력 없는 화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사진 : 일본인 작가 나카니시 이노스케(中西伊之助)(右)와 소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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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미래대 산학협력교수 / 출처 : 2016.11.19 (토)
아래 영문주소는「나카니시 이노스케」의 소설을 찾다가 찾은 네이버 블로그입니다.
이 블로그에서「너희들의 등 뒤에서」소설이 앞으로 출간 될 예정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ensang&logNo=2205210577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