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사랑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 (20) 제주무엽란

cassia 2015. 12. 2. 20:57


[제주무엽란] 우리나라에 2종뿐인 제주 자생란
1996년 이영노 박사가 문 작가 자료 받아 첫 발표… 일본에도 분포

“제주도 한라산 자락의 한 사면. 조그만 계곡은 대낮인데도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손바닥보다 더 큰 이파리를 지닌 칠엽수가 하늘을 완전히 덮고 있었다. 겨우 랜턴을 비추면서 야생화를 보기 위해 조심조심 계곡 속으로 찾아 들어갔다. 드디어 찾았다. 줄기를 곧게 뻗은 잎도 없는 놈이 보였다. ‘아!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잠시 감상에 잠겨 바라보았다. 잎도 없는 놈이 꽃을 피운 채 머금고 있었다.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떻게 렌즈에 담을지 난감했다. 빛이 하나도 없다. 플래시를 터뜨리면 고유의 색이 날아간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삼각대를 꽂아놓고 타이밍만 조절했다. 셔터를 줄로 연결해서 손떨림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도록 조정했다. 바람이 가끔 들어와서 흔들었다. 이 바람을 이용하자. 바람이 지나가다 쉬는 공간을 이용해서 촬영하기로 했다. 때는 왔다. 마침 바람이 지나가다 잠시 멈췄다. 그대로 줄로 된 셔터를 눌렀다.”

 
학명 Lecanorchis kiusiana Tuyama
현화식물문(Magnoliophyta)
백합강(Liliopsida)
난초목(Asparagales)
난초과(Orchidaceae)
무엽란속(Lecanorchis)

이렇게 해서 제주무엽란의 실체가 처음 공개됐다. 그때가 1995년 6월.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지 않았고 필름으로만 사진을 찍던 시절이다. 그 전까지 제주무엽란이란 이름 자체가 우리나라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옛날 도감에는 제주무엽란이란 이름이 수록돼 있지 않다.

처음 촬영한 문순화 작가도 알지 못했다. 문 작가는 1995년 6월 벌초하러 갔다가 제주도 후배인 제주자생란 사진작가 이경서씨가 “제주자생란을 보여 줄 테니 따라오라”고 해서 나섰다. 서귀포 한라산 자락 그리 높지는 않지만 칠엽수 아래 시커먼 계곡으로 들어갔다. 렌즈에 담기까지 6시간가량을 한 자리에 죽치고 앉은 끝에 촬영할 수 있었다. 숲 속에서 모기와의 전쟁을 몇 번이나 치른 뒤에야 얻은 성과였다.

식물학자인 고 이영노 박사는 문 작가가 제주도에 내려간 다음날 비행기로 내려왔다. 문 작가가 찍은 야생화를 보여 줬다. 이영노 박사는 여기저기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이듬해인 1996년 제주자생종으로 제주무엽란을 발표했다. 당시 이영노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무엽란은 2종밖에 자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제주무엽란과 무엽란을 가리킨다.

들꽃도감에는 제주무엽란을 ‘제주도의 상록광엽수림 밑에 자라는 부생란(腐生蘭)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잎이 퇴화되어 보이지 않아 무엽란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속명 Lecanorhis는 그리스어 lecane(접시, 대야)와 orchis(난초)의 합성으로 접시모양으로 겉껍질이 붙어 있는 난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종소명 kiusiana는 ‘일본 큐슈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제주무엽란과 무엽란의 차이는 식물체의 높이가 조금 크고(무엽란), 꽃자루는 비스듬히 서거나 옆으로 처지는(무엽란) 반면 곧게 서는(제주무엽란) 특징을 띤다. 꽃은 무엽란은 활짝 피고, 제주무엽란은 반쯤 피어서 안쪽으로 오그라든다.

수십 년간 야생화 찾으러 전국 방방곡곡을 다닌 문 작가도 제주도 이외 지역에서는 아직 보지 못했다고 한다. 2004년엔 처음 제주무엽란을 본 곳을 3번이나 찾아갔으나 개체수는 이전보다 못하지만 여전히 잘 자라고 있었다.

한국의 식물도감에는 제주무엽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상록수림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높이 10~40cm이고 황록색이나 결실기에는 검게 변한다. 길이 5~10mm의 비늘잎이 3~5장 있다. 꽃은 6~7월에 피며 연한 자주색 또는 황록색이고, 3~7개가 총상꽃차례를 이룬다. 열매는 8~11월에 익는다. 꽃술대는 앞으로 굽는다. 열매는 삭과로 좁은 원통형이고 길이 2~3cm이다. 우리나라 전라도와 제주도에 자생한다. 일본에도 분포한다.’
문순화 생태사진가
문순화(82세) 원로 생태사진가는 2012년 13만여 장의 야생화 사진을 정부에 기증했다.

평생에 걸친 과업이었기에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나누고픈 마음이 나를 흔들림 없이 이끌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본지는 환경부와 문순화 선생의 도움으로 ‘한국의 야생화’ 연재를 시작한다.

 



출처 : 월간산 [554호] 2015.12
글·박정원 부장대우
사진·문순화 생태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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