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사랑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 (16) 차걸이蘭

cassia 2015. 7. 2. 20:29


수줍은 듯 땅 보며 자라는 숲 속 요정 이름 가진 ‘야생蘭’
1992년 제주 비자림을 첫 촬영 이래 전혀 못 봐… 2012년 멸종위기종 지정

마치 마술에 걸린 숲 속의 요정처럼 쭉쭉 뻗은 비자림 줄기사이 땅을 보며 거꾸로 자라는 ‘차걸이난’. 이름부터 신기하다. 자동차에 거는 장식품같이 생겼다고 해서 ‘차걸이’란 이름이 붙었다. 자생 야생난 중에서 가장 작은 꽃을 피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걸이난 학명은 ‘Oberonia japonica ’. 일본인이 처음 찾아 발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베로니아는 왜 붙었을까? ‘니벨룽겐의 노래’에 등장하는 오베론 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베론은 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요정들의 왕이다. 그렇다. 차걸이난은 숲 속 요정의 왕이다. 햇빛이 없을 때는 좀처럼 보기도, 찾기도 힘들다. 어쩌다숲속으로 햇빛이 스며들 때 요정같이 잠깐 그 모습을 비쳐 준다. 그래서 일본인이 처음 발견한, 숲 속 요정의 왕 같은 야생 난초라 해서 학명이 ‘오베로니아자포니카’로 명명됐다.

 
문순화 사진작가가 1992년 6월 제주도 비자림에서 처음 촬영한 이래 더 이상 볼 수 없고, 촬영도 할 수 없는 차걸이난이 비자나무 줄기에 기생하며 콩짜개덩굴과 뒤엉켜 자라고 있다. .

서식지도 한국의 제주도와 일본, 대만 등지뿐. 특히 제주도에서는 거의 멸종위기 상태다. 자생지가 5곳 미만이며, 개체수도 매우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경부는 2012년 5월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했다. 국립수목원에서도 희귀식물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했다.

사진작가들은 차걸이난을 만나기 위해 숲 속에서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한다. 그것도 무거운 렌즈를 눈에 맞춘 상태에서 고개까지 쳐들고…. 잠시 햇빛이 숲 사이로 스며들면 그 틈을 놓칠새라 부랴부랴 셔터를 누른다. 팔이 떨려 초점 맞추기도 쉽지 않다. 하루 종일 기다려 한 컷 건지면 다행이다.

문순화 작가는 1992년 처음 차걸이난을 목격했다. 제주가 고향인 문 작가는 제주의 후배가 “비자림에서 못 보던 꽃이 피었다”는 얘기를 전하자 곧바로 짐을 꾸려 제주로 내려갔다. 후배와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비자나무는 상록수로 꽤 키가 크다. 높은 줄기에 생면부지의 야생난과 맞닥뜨렸다. 콩짜개덩굴과 같이 늘어져 찾기도 쉽지 않았다. 촬영은 더더욱 애매하다. 처음 차걸이난을 접하면, 야생난을 좀 아는 사람도 유심히 못 보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높은 위치에 콩짜개덩굴과 어울려 서식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제주에 사는 후배가 비자림을 잘 알고 있어 찾을 수 있었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느냐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망원렌즈로 촬영하기로 했다.

해가 서서히 옆으로 기울면서 숲 속의 요정들이 간혹 모습을 보여 줬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연신 눌렀다. 몇 장 건졌다. 문 작가가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야생 차걸이난이다.

그 이후 다시 만나기 위해 제주 비자림을 찾았다. 그 줄기는 바람에 부러지고 없었다. 비슷한 콩짜개덩굴은 여기저기 널려있었으나 차걸이난을 더 이상 찾지 못했다. 후배에게 “그 줄기는 어디에 버렸냐”고 물었다. 인근 숲 속에 그대로 뒀다고 했다. 하지만 누가 가져간 듯 흔적도 없었다. 그 이후 차걸이난을 본 적이 없다. 20년이 훨씬 지났다. 멸종위기종에 희귀식물로 최근 지정되고 분류됐다.

문 작가는 “간혹 인터넷에 등장하는 차걸이난은 야생난이 아니고 채취해서 식물원에서 키우는 난초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자생지 확인 및 유전자원 보전이 시급한 난초가 분명한 것 같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식물도감에 기록된 차걸이난은 다음과 같다.

‘숲 속의 큰 나무에 붙어서 밑을 향해 자라는 착생란이다. 잎은 4~10개가 두 줄로 배열하고, 좌우가 납작하며, 길이 1~3cm의 긴 타원 모양 또는 바소골이다. 밑부분이 줄기를 감싼다. 꽃은 4~6월에 노란빛이 도는 연한 갈색으로 피고, 원뿔모양꽃차례를 이룬다.

학명 Oberonia japonica(Maxim) Makino
식물 문 속씨식물
외떡잎식물 목 미종자목
문순화 생태사진가
문순화(82세) 원로 생태사진가는 2012년 13만여 장의 야생화 사진을 정부에 기증했다.

평생에 걸친 과업이었기에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나누고픈 마음이 나를 흔들림 없이 이끌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본지는 환경부와 문순화 선생의 도움으로 ‘한국의 야생화’ 연재를 시작한다.

 



출처 : 월간 산 [549호] 2015.07
글·박정원 부장대우
사진·문순화 생태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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