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강정,「활」(낭송 강정)

cassia 2014. 7. 1. 03:45

    강정, 「활」(낭송 강정)
     

     

     

    강정,「활」


    시간이 이 세상 밖으로 구부러졌다
    시여, 등을 굽혀라

     

    고양이 새끼가 운다
    어미 고양이를 삼키고 사람이 되려고 운다

     

    급류를 삼킨 노을이
    노을이 오빠가 되려고 운다

     

    떠돌다 지친 다리가
    다른 인간의 눈이 되려고
    멀고 먼 샅으로 기어올라온다

     

    빛이 어디 있는가
    뒤집어진 어둠의 골상을 판독하려
    한나절의 시름이 그다지 깊었다

     

    못 나눈 정을 전염시키려
    낮 동안 오줌보는 그토록 뾰로통했다

     

    혈관에 흐르는 오래된 문자들을
    고양이의 꿈이 딛고 지나는 이마 위에 처발라라

     

    팔다리는 공기가 멈춘 나무
    낭심 아래엔 죽은 별 무더기

     

    구부러진 어깨를 펴라
    갈빗대에 힘줄을 얹어
    마지막 숨을 길게 당겨라

     

    발끝으로 세계의 끝을 밀어내고
    이승 바깥에서 돌아 나오는
    흰 새벽의 눈알을 찔러라

     

    터져 나오는 세계의 명치에 구름을 띄워
    이면이 없는 幻을 쳐라, 고요히 실명하라

     

    실명하라


    시·낭송_ 강정(1971~ ). 1992년 계간 『현대시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처형극장』『키스』『활』 등이 있다.
    출전_ 활 『활』(문예중앙)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김은미
    프로듀서_ 김태형


    강정,「활」을 배달하며

     

    활은 후석기 시대에 나왔다니 그 역사가 긴 사물입니다. 우리 민족을 일컫는 '동이족(東夷族)'이라는 말이 '동쪽의 큰 활잡이'라는 뜻이라죠. 우리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후예인 셈이죠. 인간은 저마다 하나의 활이 아닐까요? 그 활로써 우리는 무언가를 겨냥합니다. 활쏘기의 궁극은 각각 자기의 과녁을 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예기』라는 옛 경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어미 고양이를 삼키고 사람이 되려고 우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저마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 활을 당깁니다. 구부러진 어깨를 펴고, 갈빗대에 힘줄을 얹어, 마지막 숨을 길게 당길 때! 이렇듯 물아일체에서 궁극의 활을 당길 때 긴장으로 심장은 뻐끈하고 근육들은 팽팽해집니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대개는 그럴 때가 인생은 절정이던 것이지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