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활」(낭송 강정)
강정,「활」
시간이 이 세상 밖으로 구부러졌다
시여, 등을 굽혀라
고양이 새끼가 운다
어미 고양이를 삼키고 사람이 되려고 운다
급류를 삼킨 노을이
노을이 오빠가 되려고 운다
떠돌다 지친 다리가
다른 인간의 눈이 되려고
멀고 먼 샅으로 기어올라온다
빛이 어디 있는가
뒤집어진 어둠의 골상을 판독하려
한나절의 시름이 그다지 깊었다
못 나눈 정을 전염시키려
낮 동안 오줌보는 그토록 뾰로통했다
혈관에 흐르는 오래된 문자들을
고양이의 꿈이 딛고 지나는 이마 위에 처발라라
팔다리는 공기가 멈춘 나무
낭심 아래엔 죽은 별 무더기
구부러진 어깨를 펴라
갈빗대에 힘줄을 얹어
마지막 숨을 길게 당겨라
발끝으로 세계의 끝을 밀어내고
이승 바깥에서 돌아 나오는
흰 새벽의 눈알을 찔러라
터져 나오는 세계의 명치에 구름을 띄워
이면이 없는 幻을 쳐라, 고요히 실명하라
실명하라
◈ 시·낭송_ 강정(1971~ ). 1992년 계간 『현대시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처형극장』『키스』『활』 등이 있다.
◈ 출전_ ☜『활』(문예중앙)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김은미
◈ 프로듀서_ 김태형
강정,「활」을 배달하며
활은 후석기 시대에 나왔다니 그 역사가 긴 사물입니다. 우리 민족을 일컫는 '동이족(東夷族)'이라는 말이 '동쪽의 큰 활잡이'라는 뜻이라죠. 우리는 활을 잘 쏘는 조상들의 후예인 셈이죠. 인간은 저마다 하나의 활이 아닐까요? 그 활로써 우리는 무언가를 겨냥합니다. 활쏘기의 궁극은 각각 자기의 과녁을 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예기』라는 옛 경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어미 고양이를 삼키고 사람이 되려고 우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저마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 활을 당깁니다. 구부러진 어깨를 펴고, 갈빗대에 힘줄을 얹어, 마지막 숨을 길게 당길 때! 이렇듯 물아일체에서 궁극의 활을 당길 때 긴장으로 심장은 뻐끈하고 근육들은 팽팽해집니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대개는 그럴 때가 인생은 절정이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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