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 「돌아보면 뒤가 파란」(낭송 박연준)
박연준, 「돌아보면 뒤가 파란」
노란 꽃 속을 돌아다녔다
거친 계단을 만났다
갑자기 가슴이 볼록해졌다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았다
꿈속에서도 거짓말을 했다
솜털처럼 복슬복슬, 부드러운 칼이
이봐, 여긴 내 침대야!
곤두서서 외쳤다
거미줄에서 만난 남자와 두 손을 잡고
몸을 비비 꼬며 기도를 했다
냄새가 났다
땅속으로 들어가
여왕개미가 알을 낳는 풍경을
오래, 구경했다
내 실크로드에는 개미들만 오갔고
나는 그들의 검은 발자국을 베고 누워
오줌을 쌌다
아주 따뜻한 강이
흐르는 듯했다
한밤중엔 무릎을 꿇고 앉아
지난 계절의 이름을 불러보거나
빙그르르 돌면서 춤을 췄다
가끔 눈 속으로 별이 떨어졌고
아침이면 눈을 떠
별들의 시체를 꺼냈다
● 시·낭송_ 박연준 –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다.
● 출전_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문학동네)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김태형
박연준, 「돌아보면 뒤가 파란」을 배달하며
낮은 자리가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낮고 낮은 위치가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보이지도 않는 낮은 자리로 거처를 옮기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선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할 수 없어서 그러합니다. 할 수 없어서 낮은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할 수 없어서.
이 꼬마 아가씨는 노란 꽃 속에서 자랐습니다. 행복했겠다고요? 천만에요. 어지러웠을 거예요. 빈혈 같은 꽃이니까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가슴이 나옵니다. 문득, 어른이 되어야 한다네요. 한 남자 아이와 거미줄에서 만납니다. 거미가 아닌데 거미줄에서 사는 일이 어떠할까요? 다행히 아직 거미가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그와의 '기도' 끝에 거미줄을 나오지만 이번엔 개미굴입니다. 더 아픈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알을 낳는 풍경을. 오!
큰 눈물에만 떨어지는 별이 있다고 하네요. 그 별의 시체를 건져낼 수도 있다고 하네요. 이 꼬마 아가씨의 '실크로드'는 왜 이런 예쁜 듯 힘겨운 여정일까요. 할 수 없어서 그래요. 할 수 없어서 그래요. 일으켜 주어야겠어요.
문학집배원 장석남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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