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오장환, 「양」(낭송 김성규)

cassia 2011. 9. 5. 06:33
    오장환, 「양」(낭송 김성규) 오장환, 「양」 양아 어린 양아 조이를 주마 어째서 너마저 울안에 사는지. 양아 어린 양아 보드라운 네 털 구름과 같구나. 잔디도 없는 쓸쓸한 목책(木柵) 안에서 양아 어린 양아 너는 무엇을 생각하느냐. 양아 어린 양아 조이를 주마 보낼 곳 없이 그냥 그리움에 내어친 사연 양아 어린양아 샘물같이 맑은 눈 포도알 모양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 좀 보아라. 가냑한 목책에 기대어 서서 양아 어린 양아 나마저 무엇을 생각하느냐. 시_ 오장환 - 충북 회인에서 태어났으며, <낭만>, <시인부락>, <자오선> 등의 동인으로 활동함. 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월북. 시집으로 『성벽』『헌사』『병든 서울』『나 사는 곳』『붉은 깃발』 등이 있음.  낭송_ 김성규 - 시인. 1977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으며,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독산동 반지하동굴유적지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 『너는 잘못 날아왔다』가 있음. 출전_ 『오장환 전집』(실천문학사) 오장환, 「양」을 배달하며 일제 식민지 시대 문인들 중 오장환을 생각할 때면 저는 그의 시 「병든 서울」과 「양」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라고 토로하는 청년 문사의 탄식에 가슴 밑바닥이 쐐하게 울려옵니다. 70년도 더 전의 저 탄식을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읊조립니다. 어쩌나요. 아직도 우리의 서울은 “병든 서울, 아름다운, 미칠 것 같은 서울”입니다. 쐐한 마음이 아려서 저는 얼른 다시 읊조려봅니다. “양아 하얀 양아 조이를 주마” 비분에 탄식하던 청년은 어느새 양을 돌보는 선한 목동의 모자를 쓰고 가녀린 울타리(가냑한 목책)에 기대어 있습니다. 여전히 비애의 정조가 흐릅니다만, 양을 부르는 목소리는 한결 차분해져 있습니다. “조이를 주마”라고 할 때 ‘조이’는 ‘종이’인데, 제 할머니는 종이를 ‘조우’라고 발음하곤 했지요. 표준어로 바꿔 종이라고 옮기는 것 보다 원문 그대로 조이라고 쓰는 게 훨씬 어울립니다. 양에게 주는 종이 위에 왠지 시인이 쓴 시가 적혀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울안에 갇혀 사는 양을 연민하는 시인의 시선은 식민지에 사는 청년의 비애에 연결되는데 단순하게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차분하게 가라앉은 슬픔이 흐르다가 마지막 행에 이르면 읽는 이의 정신을 버쩍 들게 합니다. “나마저 무엇을 생각하느냐” 학생은 시험에 갇히고 어른은 돈에, 외모에, 학벌에 갇히고 국가는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 법에 갇히고…… 일제 식민지는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일상의 곳곳에 우리의 영혼을 가두려는 식민지들이 흔하다는 생각이 화들짝 머리를 칩니다. 식민지에 갇혀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나마저 무엇을 생각하느냐! 아,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습니다. 문학집배원 김선우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