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 「깊이에 대하여」(낭송 이하석)
이하석, 「깊이에 대하여」
자판기 커피 뽑는 것도 시비꺼리가 될 수 있는지,
종이컵 속 커피 위에 뜬 거품을 걷어내면
"왜 거품을 걷어내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
나는 "커피의 깊이를 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마음에 없는 말일 수 있다.
인스턴트 커피에 무슨 근사한 깊이가 있느냐고 물으면,
대단치 않는 깊이에도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해 준다. 모두 얕다.
기실 따뜻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단찮은 깊이까지 사랑한다 해도,
커피는 어두워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실 어둠의 깊이를 얕볼 수 없다.
싸고 만만한 커피지만, 내 손이 받쳐 든 보이지 않는 그 깊이를
은밀하게 캐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걸 누가 쉬이 들여다볼 수 있단 말인가?
◆ 시·낭송_ 이하석 - 1948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으며,
1971년 《현대시학》 추천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투명한 속』,
『김씨의 옆얼굴』, 『우리 낯선 사람들』, 『측백나무 울타리』,
『금요일엔 먼데를 본다』, 『녹』, 『고령을 그리다』, 『것들』, 『상응』 등이 있음.
◆ 출전_ 『상응』(서정시학)
이하석, 「깊이에 대하여」를 배달하며
누군가 “커피타임!” 이라고 말해주면 기쁩니다.
그래 좀 쉬면서 하자. 인생 뭐 별거 있다고.......
콩다방이랄까 별다방이랄까 각종 커피전문점들이 저토록 흥행이건만
그래도 우리에게 가장 만만한 건 자판기 커피.
우리 일상의 최측근인 커피자판기에는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만도 않은
적절한 중량의 페이소스가 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오가는 일상의 모퉁이에
커피 한 잔 만큼의 쉬는 시간이 담긴 종이컵을 당신은 말끄러미 내려다 봅니다.
그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 “커피의 깊이” 같은 단어는 떠오르지 않을지라도,
이 순간의 소중함이 커피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지도 모릅니다.
‘문학적 순간’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런 순간들. 커피타임!
마음이 쉬어가는 이런 시간들이 더 자주 필요한 사소한 봄날 아니겠어요?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