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장석남, 「살구꽃」(낭송 홍연경)

cassia 2011. 4. 4. 12:41
    장석남, 「살구꽃」(낭송 홍연경) 장석남, 「살구꽃」   마당에 살구꽃이 피었다 밤에도 흰 돛배처럼 떠 있다 흰빛에 분홍 얼룩 혹은 제 얼굴로 넘쳐버린 눈빛 더는 알 수 없는 빛도 스며서는 손 닿지 않는 데가 결리듯 담장 바깥까지도 환하다 지난 겨울엔 빈 가지 사이사이로 하늘이 튿어진 채 쏟아졌었다 그 하늘을 어쩌지 못하고 지금 이 꽃들을 피워서 제 몸뚱이에 꿰매는가? 꽃은 드문드문 굵은 가지 사이에도 돋았다 아무래도 이 꽃들은 지난 겨울 어떤, 하늘만 여러번씩 쳐다보던 살림살이의 사연만 같고 또 그 하늘 아래서는 제일로 낮은 말소리, 발소리 같은 것 들려서 내려온 神과 神의 얼굴만 같고 어스름녘 말없이 다니러 오는 누이만 같고        (살구가 익을 때,        시디신 하늘들이        여러 개의 살구빛으로 영글어올 때 우리는        늦은 밤에라도 한번씩 불을 켜고 나와서 바라다보자        그런 어느날은 한 끼니쯤은 굶어라도 보자) 그리고 또한, 멀리서 어머니가 오시듯 살구꽃은 피었다 흰빛에 분홍 얼룩 혹은 어머니에, 하늘에 우리를 꿰매 감친 굵은 실밥, 자국들 시_ 장석남 - 1965년 경기도 덕적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뺨에 서쪽을 빛내다』 등이 있음.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함. 낭송_ 홍연경 - 서울TBN 리포터. 출전: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창작과비평사) 장석남, 「살구꽃」을 배달하며 살구꽃이 오는 모양을 생각해 봅니다. 고양이 발걸음보다 가볍게, 눈송이 내리는 소리보다 더 낮게 오는 살구꽃. 바쁜 생활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세상에 살구꽃이라는 게 있는지 까맣게 잊고 있는 사이, "어스름녘 말없이 다니러 오는 누이"처럼 몰래 오는 살구꽃. 떼 지어 와서는 우리 어두운 내장 속에 은은한 광채를 확 부려놓고 떼 지어 가버리는 살구꽃. 살구꽃이 살구나무 가지와 단단하게 꿰매져 있듯이 우리 마음도 저도 모르게 살구꽃과 단단히 꿰매져 있을 겁니다. 살구꽃이 올 때가 되면 우리는 아마 "손닿지 않은 데"가 자꾸 가려울 것입니다. 어머니를 잊고 있어도,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 몸에는 어머니와 단단하게 꿰매고 감친 자리가 있어서 무의식중에 거기가 자꾸 가렵듯이.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 출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