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손택수, 「스프링」(낭송 권지숙)

cassia 2010. 10. 4. 03:19
    손택수, 「스프링」(낭송 권지숙) 사내가 수레를 끌고 언덕바지를 오른다 사내의 비틀린 몸은 땀방울을 쥐어짜고 있다 수박이 실린 수레 뒤에서 배가 불룩해진 여자가 끄응끙 수레를 따른다 한쪽 손으로는 무거운 배를 안고, 한쪽 손으로는 수레를 밀면서 지난봄 사내의 넝쿨 끝엔 딸기와 외가 열렸었다 상하기 시작한 딸기를 자주 헐값에 팔아넘겨야 했었다 소아마비 뒤틀리는 사내의 몸속 구비치는 무늬가 길을 휘감고 오른다 만삭이 된 수박 수레바퀴를 돌린다 저 고행 끝에 가을이면 꼬투리가 터지리라 단단한 꼬투리 뒤틀어지는 힘으로 씨앗들이 톡 톡 터져 나오리라 머리가 짓눌릴 때마다 볼펜을 똑딱거리며 바라보는 사무실 창밖 배배 튼 길이 꼭 볼펜 속 스프링 같다 꾸욱 짓눌리는 힘으로 따악 소리를 내며 튕겨오르는 스프링. 날아갈 수 없는 허리와 목을 비틀며 기지개를 켠다 언덕위의 꼬부라진 골목길 넝쿨넝쿨 뻗어간 몸에 맺힌 만삭 한 덩이 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출전 : 『나무와 수사학』(실천문학사) 손택수, 「스프링」을 배달하며 스프링. 몸을 배배 꼬며 움츠렸다가 일시에 반동을 이용하여 솟구치는 힘. 제 몸보다 크고 무거운 수레를 끌려면, 제 몸무게보다 훨씬 큰 삶의 짐을 감당하려면, 스프링의 탄력을 위해 먼저 제 몸을 움츠려야 하지요. 수레 끄는 사내와 미는 여자가 비틀려 흉한 모습이 된 이유는 제 안의 반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몸을 한껏 웅크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몹시 힘들고 위축되어 있다면 그것은 스프링이 한껏 움츠린 상태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내 주변의 누군가가 무능하거나 보잘것없는 것 같이 보인다면 자신의 스프링을 최대한 움츠리고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누구에게나 스프링의 놀라운 탄력이 감춰져 있습니다.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 / 출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