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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뉴만(Paul Newman) 20세기 최고의 배우

cassia 2008. 9. 29. 04:53

폴 뉴만(Paul Newman) 20세기 최고의 배우

 

 

폴 뉴만 (1925~            )

Paul Newman

미국 오하이오 태생

 

 

20세기의 최고의 배우를 뽑으로면 누가 선정될까요?

 

이런 화두에서 자주 거론되는 배우라면 '험프리 보가트' '말론 브란도'  '캐서린 헵번'
'스펜서 트레이시' 같은 명배우들의 이름이 오고 갑니다.

 

그런데 이들이 '최고 인기 스타'는 아니었다는 사실이죠.

 

최고의 스타자리를 지킨 사람들은 어떤 배우들일까요? 어떤 배역이나 연기가 주어져도
거뜬히 해내는 '로버트 드 니로' '잭 니콜슨'  '더스틴 호프만' 이런 배우들이 아니었습니다.

'게리 쿠퍼'  '존 웨인' '클라크 게이블' 같은 한가지 얼굴을 가진 배우들이었죠.
60년대에는 '스티브 맥퀸' '숀 코네리' 70년대에는 '버트 레이놀즈' '클린트 이스트우드'
'로버트 레드포드'  80년대에는 '실베스타 스탈론' 90년대에는 '아놀드 슈왈체네거'
같은 배우들이 '최고의 개런티'와 '최고의 흥행'을 보장받는 스타였죠.

 

즉 '스타'와 '명우'는 사실 구분이 되는 편입니다.  헐리웃 스타시스템이 강했던 50년대
까지는 명우와 스타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지만,  뉴 시네마가 태동하고 블록 버스터영화가
흥행을 좌우하는 60년대부터 21세기인 지금까지는 '스타=명우'가 아닌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폴 뉴만'이라는 이름은 굉장히 영화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위대한 이름이죠.

 

 

 

허드(Hud 63년) 

 

 

허슬러(Hustler 61년)

 

 

 

 

젊은 시절의 폴 뉴만

 

 

폴 뉴만은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50년대 중반 '은배'(The Silver Chalice)로 데뷔하여
'상처뿐인 영광'(Somebody Up There Like Me)에서 인기를 모은 이후 그는 80년대 후반까지
항상 '주연'으로만 출연하는 명실공히 최고의 스타였죠.  60-70년대 그는 최고의 흥행력을 갖춘
배우를 의미하는, 퀴글리 출판사에서 발표하는 '그해의 머니메이킹 스타' 상위랭킹에 단골로
등장하는 배우였죠. '버트 레이놀즈'나 '실베스타 스탈론'이 반짝인기를 모았고 내리막길도 빨랐던
배우였다면 폴 뉴만은 5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상당히 장기간 인기를 누린 배우였습니다.

 

50년대 '상처뿐인 영광'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60년대 '영광의 탈출' '허슬러'
'탈옥' '내일을 향해 쏴라'  70년대 '스팅' '타워링'등 굵직한 히트작들을 그는 끊임없이
쏟아냈으며 50대의 나이가 넘어선 80년대에도 '칼라 오브 머니'로 아카데미상을 받았고,
'평결' '악의 부재'로 두번이나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가 될 정도의 활동을 보였습니다.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에서 오랜 기간 정상급이었던 그는 '명배우 반열'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뛰어난 배우였죠.  은배로 혜성처럼 데뷔했을 때 '제 2의 말론 브란도'로 운운된 것에
분개해서 '은배 따위는 최악의 영화였다'라고 다 때려치울 듯이 분개했었지만, 다행히 계속 영화에
출연하여 말론 브란도를 넘어서는 스타가 된 것이죠.(또래 배우인 말론 브란도가 조금 빨리
영화에 데뷔했다고 제 2의.. 운운한 것이 꽤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이죠)

 

총 9번의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 1번의 조연상 후보를 비롯하여 '노스바스의 추억(Nobody's
Fool)'로 95년 베를린 영화제 주연상,  '무덥고 긴 여름'(The Long, Hot Summer) 으로 58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등 그의 수상경력은 무척 화려합니다.  원래 헐리웃 인기스타들은
'상을 받는 영화'들과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흥행력도 높았고,  상도 많이 받는
연기력도 인정된 보기 드문 배우였죠.


 

 

 

판사 로이 빈(The Life and Times of Judge Roy Bean 72년)

 

 

 

 

스팅(The Sting 73년)

 

 

 

 

 

폴 뉴만은 '전성기'가 따로 없었던 배우입니다. 늘 전성기였죠.  '상처뿐인 영광'이나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같은 영화에 출연하고 칸 영화제 상도 받았던 50년대,
6번이나 퀴글리지의 '머니메이킹 스타 10'에 선정된 60년대,
'스팅' '타워링' 등 흥행작에 출연하고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수상작인 '버팔로 빌'에 출연했던
70년대,  그리고 아카데미상 후보에 3번이나 오른 80년대, 그는 정말 끊이지 않고 쉼 없는
활동을 하면서 항상 업적을 남겼습니다.

 

사실 번듯한 외모를 지닌 그는 '귀공자역'을 하려고 마음을 먹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잘나고 돋보이는 역할,  하지만 그는 오히려 밑바닥의 아웃사이더 역할을 더 많이 맡았던
배우입니다.  '노동자'나 '빈민'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폴 뉴만은 얼굴로 먹고산 배우가
될 생각은 처음부터 안하고 '복싱선수(상처뿐인 영광)'  '방화범(무덥고 긴 여름)'  '당구선수
(허슬러)'  '탈옥수(탈옥)'  '사기꾼(스팅)' 등 다양한 역할을 해냈습니다.  물론 첩보원(톤 커튼)
노벨상 수상자(국제음모 The Prize), 건축기사(타워링),  변호사(평결, The Verdict) 등
인텔리 역할도 잘 해냈죠.  강한 남자와 약한 남자를 모두 해낼 수 있고, 악역과 선역을
다 맡을 수 있는 배우였지만,  어느 역할을 연기하던 결코 상대방에게 '고분고분'한 연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강하지는 않지만 깡다구 있는 인간'같은 이미지를 준 배우였죠.

 

우리나라에는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과 같은 로버트 레드포드와 공연한 두 편의 영화와
어네스트 골드의 음악이 멋진 '영광의 탈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공연한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당구영화 '허슬러'와 '칼라 오브 머니'  그리고 '타워링' 등이 많이 알려진
폴 뉴만의 영화입니다.  그외 나이가 들어서 '조연'으로 출연한 '허드서커 대행사'와
톰 행크스와 공연한 '로드 투 퍼디션'에서도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노익장을 과시한 영화
'노스바스의 추억(Nobody's Fool)'에서도 인상깊은 연기를 보였죠.

 

 

 

내일을 향해 쏴라(69년) 왼쪽은 로버트 레드포드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58년)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저는 개인적으로 1967년에 출연한 '탈옥(Cool Hand Luke)'에서 보여준 연기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통보받고 아주 슬픈 표정으로 기타를 치면서
침대에서 Plastic Jesus를 노래하는 연기가 정말 압권이었죠. (이 때 노래한 곡이 우리나라에서 '오란씨'
광고의 CM송으로 쓰였습니다.)

 

폴 뉴만은 한 때 7번이나 아카데미 상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수상을 못한 불운한 배우였습니다.
이상하게도 유독 폴 뉴만이 굉장히 뛰어난 연기를 보여서 후보에 오른 해에는 전혀 어이없는
수상 결과가 나오곤 했습니다(제가 보는 관점으로)  1958에 출연한 영화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에서의 열연으로 후보에 올랐는데 이 때 수상한 배우는 '애수의 여로(Separate Table)'
의 데이빗 니븐 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사실 데이빗 니븐은 '명확한 주연'으로 구분하기
어려웠죠.  출연 비중이 적은 편인.  1967년 영화 '탈옥'에서 후보에 오를 때 수상했던 배우도
'밤의 열기 속에서;(In the Heat of the Night)'의 로드 스타이거였는데 이 영화도 사실상 주연은
시드니 포이티어 였죠.  1961년은 더 기가 막히죠.  '허슬러'는 폴 뉴만의 최고 대표작으로
꼽혀도 손색이 없는 영화였죠.  그런데 아카데미상 수상은 '뉘른베르크의 재판'의 '맥시밀리안
셀'이었고,  분명 맥시밀리안 셀은 '조연상'후보에 올라야 할 정도로 영화속의 비중은
'주연'이라고 할 수는 없었죠.  이상하게도 폴 뉴만이 후보에 오른 해에는 '주인공'이 아닌
배우들이 수상을 하는 징크스가 계속 발생한 것입니다.  이런 '불운' 때문에 폴 뉴만은
환갑이 되도록 아카데미상과 인연이 없다가 1986년 출연한 '칼라 오브 머니'로 수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 칼라 오브 머니는 폴 뉴만의 최고의 영화는 아니며 그의 대표작 '베스트 5'도
아닙니다. 

 

 

 

 

 

1998년의 모습 

 

 

 

1967년 작품 탈옥(Cool Hand Luke)

 

폴 뉴만은 여배우인 '조안 우드워드'와의 잉꼬부부생활로도 유명한 배우입니다.  한 번의 이혼 후
1958년 조안 우드워드와 결혼하여 3명의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죠.  수많은 헐리웃의
스타들이 여성편력이 강했지만, 폴 뉴만은 상당히 모범적인 가정을 보여 준 배우입니다.

 

폴 뉴만의 라이벌은 '말론 브란도' '스티브 맥퀸' 등을 꼽을 수 있죠.  말론 브란도는 50년대
초반에 일으킨 돌풍에 비해서 60년대에 계속되는 부진속에 보냈고, 72년 대부로 기사회생하기
전까지는 긴 슬럼프를 겪었죠.  스티브 맥퀸은 60년대에 최고 인기를 누린 배우였으나 엄연히
그는 명우가 아닌 '스타'였고,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큰 업적을 남기지 못했죠.  영화는 그저
그래도 자기 자신을 돋보이는 스타가 스티브 맥퀸이었다면 영화와 배우 모두가 돋보였던
인물이 폴 뉴만입니다.

 

80고개를 넘어선 폴 뉴만은 얼마전 배우로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아마도 '로드 투 퍼디션'이
우리가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폴 뉴만의 마지막 영화가 될 듯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이젠
기억력도 감퇴되고 스스로 연기를 하기가 어렵다고 판단, 은퇴선언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열정적으로 '레스토랑'사업은 계속 한다고 합니다.

 

50여년이상을 열정적인 연기활동을 했던 배우 폴 뉴만, 그는 진정 20세기 최고의 배우
반열에 능히 오를 자격이 있는 '살아있는' 명배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