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영화

책이 없는 세상? / 화씨 451

cassia 2008. 9. 29. 04:38

 

 

화씨 451

1966년 영국영화

원제 : Fahrenheit 451

감독 : 프랑소와 트뤼포

원작 :  레이 브래드베리

출연 : 오스카 워너, 줄리 크리스티, 시릴 쿠삭

안톤 디프링, 마크 레스터(까메오)

 

'화씨 451'은 미국의 과학소설 작가인 레이 브래드베리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누벨바그'의 감독으로 알려진 프랑스감독 프랑소와 트뤼포의 작품이지만, 영국에서 제작하여
영어로 만들어진 영화이고, 등장하는 배우들도 익히 알려진 영어권 배우인 줄리 크리스티와
오스카 워너 입니다.

 

소재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미래의 사회'를 다룬 영화입니다.  인간성이 말살되어
가는 미래의 암울한 사회상을 다룬 영화로 '소일렌트 그린'이라는 영화와 유사성도 있습니다.
소일렌트 그린이 '미래의 식량,환경문제'를 다룬 작품인 반면, 화씨451은 '문학이 말살되는 미래'를
다룬 작품입니다.

 

지구의 어느 미래사회,  '소방관'이라는 의미의 Fireman이 이 영화에서는 '방화수'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소방관처럼 유니폼을 입고 긴급 출동을 하는 집단이지만,  소방관이 불을 끄는 직업인
것과는 반대로 '불을 지르는'역할을 합니다.  그들의 임무는 온 세상의 책이란 책은 다 발견하여
태워버리는 일.  책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오면 소방차 처럼 생긴 자동차를 타고 긴급 출동하여
책을 압수하여 태워버립니다. 

 

책이 없는 사회, 사람들은 생각이 없이 멀거니 앉아서 TV를 보며 살아가고 부부간의 생활도
무미건조합니다.  책을 태우는 방화수가 직업인 몬태규,  승진을 앞둔 그는 어느날 우연히
아내와 꼭 닮은 클라리스라는 젊은 여성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집에 돌아온
그를 맞이하는 아내 린다,  종일 TV만 보면서 생각없이 지내는 그들 부부,  몬태규는
자신이 태우는 책을 몰래 빼돌려서 집에 가져와서 읽으면서 '생각하는 지식의 사회'에 대한
갈망을 차츰 하면서 변화화게 됩니다.

 

 

소방차 긴급 출동!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소방'이 목적이

아니라 책을 태우는 '방화'가 목적이다.

 

 

몬태규(오스카 워너)는 책 소각을 담당하는 유능한 방화수다.

왼쪽은 방화수의 보스역을 연기한 시릴 쿠삭

 

 

몬태규와 클라리스

 

 

TV만 보고 물건만 새로 사는 아내와 무료한 결혼생활을

하는 몬태규, 그런 삶이 책을 접하면서 변하게 된다.

 

 

오스카 워너가 연기한 주인공 몬태규는 책을 소각하는 일에 앞장서는 방화수이지만
클라리스라는 여성을 만나서 점차 변해가면서 책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닥터 지바고'와 '달링'으로 알려진 줄리 크리스티는 몬태규의 아내 린다역과 그를 책으로
인도하는 젊은 여성인 클라리스역을 모두 연기하는 1인 2역을 보여줍니다.  린다역에는 긴 머리로
클라리스 역에서는 짧은 숏커트 머리로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등장합니다.  같은 여배우가
생각없이 TV만 보면서 가구만 사들이는 단순한 여성역할과 책을 읽고 생각하는 지식인 여성역을
각각 연기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같은 외모 '다른 내면'

 

50년대에 쓰여진 미래에 대한 소설을 60년대에 영화로 만든 작품.  우리는 이 영화보다
40여년 후에 살고 있는 '미래의 인간'들로서 영화속의 미래와 지금 현재를 비교하게 됩니다.

다행히 지금 세상은 이 영화나 소일렌트 그린에서 다루어진 것처럼 암울하고 삭막하지 않습니다.
영화속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책을 숨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장면들이 나오며
아기의 몸속, 토스터기, 도자기속 등 다양한 곳에 책을 보관하는데,  디지털 시대가 된 요즘은
훨씬 쉽게 보관할 수 있습니다.  열쇠고리보다 작은 USB드라이브 속에만 수십권 이상의 책의 분량을
저장할 수 있으니까요. 

 

약 15년전쯤 복사기만한 크기의 광파일이라는 시스템에 2만페이지가 넘는 책의 분량을 저장할 수
있었고,  90년대 중반에는 손바닥만한 CD에 백과사전 한권이 통째로 저장되는 것 자체가 무척
신기했던 시절이 있지만, 지금은 그 때보다 몇십배이상 커진 보관용량의 기술을 가진 시대를 살면서
소위 '미래사회'를 다룬 작품에서 책 한권 보관하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들이 이채롭게 느껴집니다.

 

 

1인 2역을 잘 해낸 줄리 크리스티

미래의 사회에 길들여진 몬태규의 아내 역으로는 긴 머리를

책을 사랑하는 진보적 여성 역으로는 숏 커트를 하여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미래의 교통수단으로 나오는 모노레일

어릴적 '어린이 대공원'에서 타보았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뜻하지 않은 마크 레스터의 깜짝등장.

단 한장면 몇초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다룬 미래의 대중교통수단은 선로밑을 달리는 '모노레일'입니다.  방화수들의 위상이
높은 사회,  책이라는 도구가 없이 TV에서 방송하는 내용들을 보며 살아가는 사회,  책을 지녔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수용되는 사회,  즉 '지식'이 말살된 미래의 사회상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누벨바그 라는 영화사조의 사실상의 창시자역할을 했던 '지식인 감독'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은
미래의 세계를 '모노레일'과 '방화수 자동차' '적막한 분위기의 주택'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속의 미래에서는 첨단기술이나 과학의 발전은 찾아볼 수가 없고,  '지식이 소각'되어지는
일괄통제되는 사회의 모습만이 나올 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살아있는 책들'이라고 부르는 책을 암송하여 머리속에 넣어 다니는 사람들이
흰 눈이 내리는 숲속에서 책을 암송하는 모습으로 끝납니다.  눈 내리는 겨울.... 겨울이라는 의미는
'추위'를 상징하므로 '암흑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흰 눈이 내린 겨울의 정경은 암흑기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면서 따뜻한 봄 햇살을 기다리는 '희망'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후반부는 그러한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물질문명이라고
할 수 있는 '말과 글'  그리고 이 말과 글에 의해서 창조된 '책'  책에 의해서 교육받고 생각하는
인간들....  이런 인간의 소중한 자산이 말살되는 사회속에서 그것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희망의
메시지를 남기며 끝납니다.

 

 

책이 타버리는 장면은 비장하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TV를 보며 노닥거리는 아내의 친구들에게 책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몬태규

 

 

주인공 몬태규역의 '오스카 워너'

스탠리 크레미어 감독의 '바보들의 배'에서 시몬느 시뇨레와 사랑을 나누는

역할로 출연했던 배우이다.

 

 

흰눈이 내리는 겨울을 배경으로 책을 읽는 집단의

모습을 보여주며 희망의 메시지로 마무리되는 엔딩씬.

 

우리는 미래사회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속에서 문명의 순기능이 아닌 역기능에 대한 비판, 즉
지나치게 기계화되고 발달한 사회의 비판어린 시선을 자주 접합니다.  '책'이라는 물건은 과연
올바른 문명의 자산일까요? 아니면 영화속에서 '방화수'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허황된 사고방식과
딴 생각을 심어주는 불합리한 산물일까요?  어쩌면 '정치적 이념'으로 심하게 대립되고 갈라져온
20세기 이후의 삶에서 보면 '책'은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온갖
출판물과 지식이 쏟아져 나오면서,  '다이어트 열풍' '웰빙 열풍'등의 부작용도 '정보와 지식'이
전해준 폐단일 수 있습니다. 

 

참다운 지식과 올바른 사고를 전해주는 것이 진정한 '지식사회'에서의 역할일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결론을 지어 본다면 '지식과 경험'이 병행되는 사회가 가장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경험이 없이 책으로만 습득된 지식의 한계는 사회생활을 하는 즉시 뼈저리게 경험하게 됩니다.
'책과 지식'은 행동하는 사람들의 삶의 밑바탕이 되어야지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람이란 '생각하고 행동하기'위해서 살아가는 것이고, 생각없이 행동하는 것이나, 실천없이
생각만 하는 것 둘 다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과 실천이 적절히 조화되는 사회속에서
'문명의 폐단'없이 세상이 잘 돌아가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ps1 : 몬태규가 아내의 친구들에게 책의 한 귀절을 읽어주고 그 귀절을 들은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책이 말살되고 획일적인 체계의 사회속에서도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감성'은 여전함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물론 그 눈물흘린 여성은
        책이라는 저속한 물건에 의해서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을 부끄러워 하며 몬태규를 원망합니다.
        감성은 그래서 인간의 본성이고 '이성'은 교육과 훈련으로 지배될 수 있는 것이겠죠.

 

ps2 : 이 영화 제목과 유사한 '화씨 9/11'이라는 작품이 마이클 무어에 의해서 제작되어 칸 영화제
         대상을 받았고(그 때문에 올드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으로 밀렸습니다.) 칸 영화제 대상영화중
         보기 드물게 1억불의 수익을 미국에서 올렸습니다.  화씨451의 원작자 레이 브래드베리는
         유사제목의 차용때문에 마이클 무어에게 굉장히 화를 냈다고 합니다.   제목 '화씨451'의
         의미는 '종이가 타는 온도'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