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영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 인체비례가 유명한 이유

cassia 2008. 4. 9. 12:38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 인체비례가 유명한 이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비트루비우스 고대 로마문헌을 읽고 그렸다는 비트루비우스적 인체비례도,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이 단순한 그림이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그림에는 단지 인간이 팔과 다리를 벌리고 있을 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체비례에서 인간은 사각형과 원의 중앙에 놓여 단순히 스케치 처리되었으며, 사람의 팔과 다리가 움직일 수 있다는 역동적인 면만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간단한 그림이지만 이 스케치는 기술과 과학문명이 인간에 의해 발달될 것임을 예고하는 그림이다. 건축학과 기계학에서 응용할 수 있는 조화로운 다차원적 공간창출척도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이 그림을 통해 발견한다면 몇 백 년 전 그려진 레오나로도 다빈치의 이 간단한 그림은 스케치의 단순함에 비해 그리 간단한 내용으로 사유되지 않는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직립보행을 한다는 사실이다. 직립보행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세상의 중심에 서있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면서 주변의 환경과 자연을 감지할 때  중심에서 외부에 있는 것을 인지하는데 이때 인간은 중심에 서 있다고 은연중 판단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상체를 왼쪽과 오른쪽 방향으로 돌리며 사물을 관찰하고 손으로 확인을 한다. 이런 상체는 인지범위의 중심에 서게 된다. 하체의 경우 앞과 뒤로 이동케 하며 몸을 기준으로 전후 방향을 인지케 한다. 즉 인간은 직립보행 수직적인 삶을 통해 위 아래 공간만을 생각하지 않고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앞쪽과 뒤쪽에 있는 공간을 인지하는데, 이때 인간의 몸은 정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중심에서 주변의 상황을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은 세상의 중심에 위치해, 적어도 4방향으로 사고하는 다차원적 공간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는 건축학과 기계공학 발달에 중요한 베이스가 된다.

     

    인간의 본성은 그래서 한 공간을 두고 4등분하는데 익숙해 져있다. 공간을 나눈다는 것은 공간을 다차원적으로 활용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건축학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예전 로마인들은 이런 인간의 본능에 충실했던 것 같다. 로마군인들이 건축한 Castrum (성채)는 이런 기본적 원리에 의해 지어졌음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성채들은 현재 유럽 여러 도시의 뼈대가 되었다.

     

    이런 인간의 본능적 능력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인도 최고의 신 브라마의 머리가 4개로 4방향을 향해있다. 또한 기독교의 몇몇 성화를 보더라도 이런 인간적 본능이 충분히 확인된다. 그림 중심 원 한 가운데에는 신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가 있으며, 그 원은 4등분되어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이 자리를 잡고 있다.

     

     

    4개의 머리를 가진 브라마

     

    이렇게 4방향으로 생각하고 활동하는 인간의 활동범위를 보여주는 작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투르비우스의 비례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간이 4방향으로 활동하고 이에 따라 공간을 나누고 다차원적 사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런 인간의 본능은 사고를 할 때도 범주를 나누고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게 하여 학문의 발전을 가져오게 했다. 또한 주어진 환경에 따라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넘어선 창조를 하게 되는데 다차원적 사고에 따른 인간의 무수한 건축물이 바로 이 새로운 창조에 해당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간이 직립보행을 통해 다차원의 세계에서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그림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자연이 낸 인체의 중심은 배꼽이다. 등을 대고 누워서 팔 다리를 뻗은 다음 컴퍼스 중심을 배꼽에 맞추고 원을 돌리면 두 팔의 손가락 끝과 두 발의 발가락 끝이 원에 붙는다정사각형으로도 된다. 사람 키를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잰 길이는 두 팔을 가로 벌린 너비와 같기 때문이다.” 비투르비우스의 문헌에 기록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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