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영화

명화의 언저리

cassia 2008. 4. 8. 16:31

     일반적으로 십이간지는 심심풀이로 챙겨 보는 띠별 운세 정도의 의미겠지만, 백제 미술품이나 고구려고분벽화에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봉황이나 현무, 주작에서부터 지금도 쉽게 볼 수 있는 양, 사슴, 토끼까지 온갖 동물들이 등장한다.
    미술에서 동물의 의미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은,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CG 덕택이었다.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대왕이나 장군 같은 평면적인 인물들이 한층 신비롭게 채색된 데에는 주작이나 현무 등 상징 동물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온갖 비주얼에 눈이 물든 현대인들에게는 별 것 아니겠지만, 볼거리가 없던 고대인들에게 미술품에 나타난 동물들의 모습은 압도적이고 신비한 의미로 다가갔을 것이다.(그림1) 꼭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서양 미술사 책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라스코동굴벽화 역시 동물이 주인공인 것을 감안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술사 속 동물의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또 미술사 속 동물들은 그 시대의 문화나 생활 수준을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더욱 흥미롭다.



    십이간지의 처음에 나오는 쥐는 17·8세기 정물화에 자주 등장한다.(그림 2, 그림 3) 풍요와 다산을 뜻하는 우리네 해석과는 달리 서양 미술사에서 쥐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악마를 뜻한다. 평범한 정물화 같지만 하나하나의 대상이 뜻하는 바를 알고 보면 무척 섬뜩한 의미가 담긴 정물화들이 있는데, 딱 보기에도 왠지 음산한 플랑드르 정물화들을 꼽을 수 있겠다. 이런 정물화에서는 대개 쥐와 호두, 포도가 세트인 양 함께 등장하는데 호두는 예수님을, 포도는 예수님의 피를 나타내고, 당장 호두를 갉아먹을 듯한 쥐는 악마를 상징한다. 쥐가 이런 악마적인 의미를 뜻하게 된 데에는 중세 유럽을 휩쓴 페스트가 큰 역할을 했다. 비록 쥐가 페스트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밝혀내지는 못했으나 중세인들은 쥐떼가 이동하는 길을 따라 검은 천사가 찾아와 죽음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쥐와는 달라도 같은 쥐과인 햄스터를 키우는 애호가들이 들으면 정말 섭섭할 소리다. 한 가지 위로가 되는 점이라면, 서양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악독한 동물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이 동물은, 바로 뱀이다.(그림 4, 그림 5)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한 죄로, 뱀은 거의 모든 그림과 조각에서 악을 상징한다. 재미난 사실은 뱀을 나타내는 라틴어 ‘드라코’가 용을 나타내는 단어로도 쓰이며, 그 때문에 용은 종종 뱀같이 사악한 악마이되 더 무서운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는 점이다. 뱀의 이미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드라코라는 이름이 붙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이 거의 악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해리 포터』에서 시종일관 해리 포터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말포이의 이름 역시 드라코가 아닌가 말이다. 아담이 아니라 하필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어 원죄를 지었기 때문에, 뱀은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자세를 드러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성모마리아를 제외한 일반 여성이 나오는 그림에 뱀이 등장하는 경우, 그 뱀은 창녀를 뜻한다. 뱀과 같이 악마를 뜻하는 동물들은 도덕 관념이 변하면서 시대에 따라 지칭하는 바가 달라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바로크 회화에서의 뱀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갈등이 첨예했던 시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사악한 신교도를 가리킨다.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이 동물은, 바로 뱀이다.(그림 4, 그림 5)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한 죄로, 뱀은 거의 모든 그림과 조각에서 악을 상징한다. 재미난 사실은 뱀을 나타내는 라틴어 ‘드라코’가 용을 나타내는 단어로도 쓰이며, 그 때문에 용은 종종 뱀같이 사악한 악마이되 더 무서운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는 점이다. 뱀의 이미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드라코라는 이름이 붙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이 거의 악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해리 포터』에서 시종일관 해리 포터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말포이의 이름 역시 드라코가 아닌가 말이다. 아담이 아니라 하필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어 원죄를 지었기 때문에, 뱀은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자세를 드러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성모마리아를 제외한 일반 여성이 나오는 그림에 뱀이 등장하는 경우, 그 뱀은 창녀를 뜻한다. 뱀과 같이 악마를 뜻하는 동물들은 도덕 관념이 변하면서 시대에 따라 지칭하는 바가 달라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바로크 회화에서의 뱀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갈등이 첨예했던 시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사악한 신교도를 가리킨다.

     

     


    쥐, 뱀과 더불어 십이간지의 동물 중 서양 미술사에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진 또 다른 동물들을 꼽자면, 바로 돼지와 원숭이다. 실제로 키워보면 깨끗한 환경과 맑은 물을 좋아하는 돼지는 그 특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언제나 사치, 게으름 등 악덕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나마 돼지의 명예를 위해 다행이라면, 중세 이후 농민들의 달력에서 돼지는 늘 크리스마스 축제를 나타내는 11월이나 12월의 상징이었다는 점이다. 돼지가 늘 부정적인 의미만을 나타냈던 데 반해 원숭이는 좀 더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원숭이가 인간과 너무나 닮은 이상한 동물임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원숭이를 저주를 받아 어딘가 기형이 된 인간이나 인간으로 변신하려는 악마의 중간쯤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개나 과일, 꽃과 함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원숭이들은 늘 악마가 인간 세상을 엿보듯 무언가를 몰래 탐색하는 모습으로 나온다.(그림6)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신대륙이 개척되면서 유럽인들이 원숭이를 애완동물로 키우기 시작하자 원숭이의 이미지도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래서 로코코 시대 그림 속의 원숭이는 풍부한 미각이나 즐거움의 상징으로 나타난다.(그림7)


    그렇다면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좋은 의미의 동물은 무엇일까? 서양 미술사의 기본적인 주제들이 죄다 그리스신화나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대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그 주인공은 우리가 흔히 듣는 구절, ‘너는 나의 어린 양’이라는 성경 문구에서 말하듯이 바로 양이다. 얼핏 보면 동물을 경배하는 원시 종교 집단을 그려놓은 것 같은 얀 반 에이크의 유명한 그림인 「신비스러운 양에의 경배」는 서양 미술사에서 양의 의미를 이해하지 않고는 도대체 해석할 수 없는 작품이다.(그림 8, 그림 9) 그림을 자세히 보면 제단 위에 놓인 양의 목에서 나온 피가 성배에 떨어지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성배에 떨어진 양의 피와 하얀 양은 그 자체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희생을 의미한다. 화가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그릴 자리에 대신 피를 흘리고 있는 양을 그려 넣은 것이다. 이런 종교적인 의미 탓에 양은 르네상스 이후 회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특히 어린 아기 예수가 양과 함께 노니는 풍경은 예수님의 운명을 미리 보여주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서양 문학에서도 양은 ‘양의 탈을 쓴 이리’라는 말처럼 항상 정결하고 순수한 무언가를 나타낸다.

     


    양이 예수님의 희생이라는 다소 거창한 주제를 설파하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사소한 삶의 미덕을 나타내는 귀여운 동물은 바로 토끼다. 막 아이를 낳은 산모를 그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 번에 여덟 번 꼴로 구석진 곳에 슬쩍 삽입된 듯한 토끼의 모습을 볼 수 있다.(그림10) 그 모습이 하도 자연스러워 당시에는 요즘처럼 애완용으로 집에서 토끼를 기른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들 법도 한데, 사실 토끼가 등장한 이유는 따로 있다. 토끼가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유럽인들에게 토끼는 20세기 초반까지도 식용동물이었지, 애완용이 아니었다.

     



    가장 흔한 애완동물이라 할 만한 개와 고양이는 유럽인들의 생활과 매우 가까운 탓에 그림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개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정절을 의미해 결혼식 그림이나 여자가 혼자 등장하는 초상화에 자주 곁들여진다.(그림11) 중세 시대에 마녀나 악마를 상징했던 고양이는 르네상스시대 들어 그 의미가 다소 완화되었다. 종종 개와 세트로 그려지는 고양이들은 주로 서로 싸울 듯 노려보는 장면으로 그려지는데, 이것은 고양이가 반감이나 반대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언가 긴장되는 상황이나 반목과 갈등이 심한 국면을 그린 그림을 잘 살펴보면, 서로 노려보고 있는 개와 고양이를 찾아볼 수 있다.(그림12)


    주변에서 흔히 보는 동물들이지만 그림 속에서는 이토록 많은 것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이야기는 어떤 면에선 사실이라 할 수 있다. 동물이 상징하는 바를 알면 동물의 자세나 종류만 보고서도 그림 속 상황을 짐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동물들을 그렸던 작가들의 머릿속에는 이런 해석이 들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그들의 머릿속에는, 동물들이 가진 미지의 힘과 그에 대한 존중이 가득 들어 있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이지은 | 프랑스에서 소소한 생활사적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다. 정치경 제사보다 궁중생활사나 사회사에 관심이 많아, 문화재 역사학 중에서도 가구처럼 일명‘움직이는 문화재’를 전공으로 삼았다. 감정사로 일하고 있지만 글 써서 먹고 사는 게 꿈이며, 책『귀족의 은밀한 사생활』, 『유럽 장인들의 아틀리에』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