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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진화과정을 본뜬 프로그램

cassia 2007. 9. 16. 13:34
생물진화과정을 본뜬 프로그램
모차르트 42번 교향곡은 컴퓨터 작품 下
2007년 04월 24일 | 글 | 이인식/과학평론가ㆍ |
 
사람의 창조성에는 못미쳐
엠미(EMI)는 ‘음악적 지능의 실험’(Experiments in Musical Intelligence)을 뜻하는 영어 약자이다. 엠미를 개발한 미국의 데이빗 코프는 작곡자이자 음악교수이다. 41살 되는 1982년 작곡가로서 한계를 느끼고 자신의 창작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매달렸다. 15년간 10만줄의 컴퓨터 부호를 작성하는 노력끝에 엠미를 완성하였다.

퍼스널 컴퓨터에 사용되는 프로그램이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쇼팽의 교향곡과 같은 음악을 작곡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음악계를 경악시켰다. 가령 엠미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교향곡 41개를 분석하여 42번째 교향곡을 작곡해냈다. 모차르트 사후 2백여년이 지나서 그가 부활하여 신곡을 발표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아론과 엠미의 성공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창조적인 능력에 대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예컨대 아론이 그린 그림의 주인을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아론이 코헨의 창조적 재능의 산물이므로 아론은 코헨의 꼭두각시일 따름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서는 코헨이 아론이 그리게 될 그림의 내용을 예측하지 못하므로 그림의 주인은 아론이라고 주장한다. 전자가 컴퓨터 프로그램의 창조성을 부인하는 입장이라면 후자는 그 반대이다.

또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창조적인 능력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창조성의 중요한 요소인 개성 문제를 거론한다. 예술가들은 창작활동을 하면서 일련의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므로 개인적 특성이 작품에 반영되지만, 아론은 코헨이 정해놓은 규칙을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므로 자율적인 선택이 불가능하여 개성있는 작품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아론이 예술가들처럼 의사결정의 선택을 한다고 주장한다. 단지 그 선택 방법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개인적 경험과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반면에 프로그램은 주사위를 던지듯 무작위적으로 선택하는 차이가 있을 따름이라는 주장이다.

코헨의 예술적 재능을 흉내낸 아론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인정하더라도 인간의 창의성과는 비교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에 기록된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보여준 창조성은 단순히 기존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변형시킬 때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을 아론이 갖고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아론이 다른 프로그램보다는 창의적이지만 사람에 버금가는 창조성을 가지려면 반드시 자신의 작업을 자율적으로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생물진화과정을 본뜬 프로그램
아론의 작업과정
아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생물이 진화하는 과정을 프로그램에 응용하는 이른바 진화적 미술(evolutionary art)의 형태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인물은 윌리엄 라탐과 칼 심즈이다.

영국의 조각가인 라탐은 뮤테이터(Mutator)를 개발했다. 뮤테이터의 본래 의미는‘돌연변이 유발 유전자’즉 다른 유전자의 돌이변이율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지닌 유전자이다. 1980년대초 대학생 시절에 수정란이 두개의 딸세포로 분열되는 단순한 과정을 반복하여 복잡한 형태의 성체가 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고 이러한 세포분열과정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다.

뮤테이터는 한개의 간단한 그림으로 시작하여 대여섯개의 딸그림을 생성한다. 딸그림은 어버이 그림과 약간씩 다르다. 딸그림의 변화는 아주 간단한 규칙을 적용한 결과이다. 여러 세대에 걸쳐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 첫번째 그림과는 모양이 전혀 다른 자손그림들, 이를테면 로봇, 거미, 탱크, 벌레 따위를 닮은 그림이 나타난다. 요컨대 뮤테이터는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기묘한 모양들을 그려낼 수 있다.

한편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인 심즈는 라탐과 비슷하지만 좀더 정교하게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방법으로 진화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심즈의 방법은 디옥시리보핵산(DNA)의 활동을 흉내낸 것이다.

심즈의 프로그램에서 각 이미지는 그 자신의 미니프로그램에 의해 생성된다. 딸이미지를 만들 때에는 미니프로그램끼리 서로 짝짓기를 한다. 짝짓기는 한 미니프로그램이 다른 미니프로그램과 부호 몇줄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딸프로그램에서 때때로 임의의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진행되면 단 한줄에 불과했던 미니프로그램이 여러개의 다양한 자손들로 구성된 프로그램으로 진화된다. 심즈의 프로그램은 라탐의 뮤테이터보다 훨씬 독창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라탐과 심즈의 프로그램은 진화에 의한 변형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수정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아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처럼 미적인 평가기준에 의해 변형을 판단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아론이나 엠미 역시 자신의 작업을 심미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이론가인 미국의 존 서얼 교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사람처럼 창조적 능력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서얼은 “프로그램은 모두 구문(syntax)이며 의미(semantics)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다시 말해서, 컴퓨터는 기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기호를 조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규칙에 따라 동작하기 때문에 사람처럼 마음을 가질 수 없다. 마음이 없는 컴퓨터가 창의성을 가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뜻이다.

물론 서얼도 컴퓨터가 셰익스피어처럼 글을 쓰고 베토벤처럼 작곡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컴퓨터의 작품이 제아무리 훌륭한 것이라 할지라도 기호 조작의 결과일 따름이므로 컴퓨터는 결코 인간의 창조성을 본뜰 수 없다는 것이 서얼의 생각이다.

카피캣의 유추능력
사실상 현재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는 예술을 창조하고 감상하는 인류의 정신과정을 따라잡을 수 없으며 미래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예술을 대할 때 마음 속의 수많은 개념과 경험이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미묘하게 연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마음의 연합과정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본뜨는데 성공했다. 대표적인 보기는 ‘흉내장이’를 의미하는 카피캣(Copycat)이다.

미국의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교수는 출세작인 ‘괴델, 에셔, 바흐’(1979년)를 펴낸 직후 마음의 창조적 과정에서 일어나는 연합을 연구하기 위해 카피캣을 고안했으며, 1995년 펴낸 ‘유동적 개념과 창조적 유추’라는 저서에서 이론을 체계화하였다.

카피캣은 유추능력을 가진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유사한 점을 찾아내서 다른 사물을 미루어 추측하는 것을 유추라 한다. 호프스태터가 유추능력에 관심을 가진 까닭은 유추가 예술과 과학에서 창조적 능력의 가장 공통적인 원천이기 때문이다. 많은 과학적 통찰력은 ‘심장은 기본적으로 펌프와 유사하다’라는 표현처럼 강력한 유추의 형태로 나타난다. 예술가들에게 유추는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수단이 된다. 가령 시인은 ‘달은 하늘 위에서 흔들거리는 유령선이다’라는 표현처럼 유추를 이용하여 전혀 관계가 없는 개념을 연결시킨다.

그러나 카피캣의 유추능력은 제한되어 있다. 알파벳 연속체 사이의 유추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카피캣에게 ‘abc가 abd로 바뀌면 pqr은 무엇으로 바뀌는가’하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pqs’라고 대답한다. 이어서 ‘xyz는 무엇으로 바뀌는가’라고 물으면 놀랍게도 ‘wyz’라는 답을 내놓는다. 보통사람들은 대개 ‘xyd’라고 대답하기 때문에 카피캣의 유추능력은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카피캣이 wyz라는 답을 내놓은 추리과정은 다음과 같다. abc와 xyz는 알파벳의 시작과 끝이다. d는 c의 다음이지만 z의 다음 글자는 없다. 그러므로 정상적으로는 정답이 없다.

카피캣은 c와 d의 관계에 주목한다. d는 알파벳의 첫글자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순서(ab)에서 c의 다음에 오는 글자이다. 그렇다면 알파벳의 끝글자에서 뒤로 가는 순서(yz)에서 x다음에 오는 글자는 무엇인가. 그것은 w이다.

창조적 프로그램은 가능한가
호프스태터가 카피캣을 개발한 목적은 예술가의 창조적 능력을 모방하는데 있지 않고, wyz라는 답을 내놓는 것처럼 창조성에 필수적인 사고의 유동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카피캣이 알파벳 연속체를 판단하는 기능은 그림이나 음악을 평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카피캣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유추에 의해 미적 판단을 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호프스태터는 사람의 뇌에 필적할만한 성능을 가진 컴퓨터가 개발되면 사람의 창조적 사고과정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모방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