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함동선 시인의 시

cassia 2007. 4. 3. 06:01

함동선 시인의 시

   ―「내 이마에는」,「모란공원 묘지에서」



   내 이마에는

   故鄕을 떠나던 달구지 길이 나있어

   어머님 생각이 날 때마다

   쇠바퀴 밑에 빠각빠각 자갈 깨는

   소린

   수십년의 시간이

   수백년의 무게로

   우리의 아픈 歷史를 베어내지만

   세월따라 그 세월을 동행하듯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소걸음 그대로

   스물여섯 해의 땀에 지워지는

   내 이마에는

   故鄕을 떠난 달구지 길이 나 있어

                                      ―「내 이마에는」전문


   근 백년간의 낮과 밤으로

   꽉 찼는데

   속 긁어낸 박처럼 가벼운 장모님 관은

   소꿉놀이하던 질경이를 밟고 언덕을 오른다

   산길과 같은 삶이었는데

   오늘은 백 걸음 가운데 한 걸음도

   불편하지 않은 것 같다

   풀향기 뭉클한 돌돌돌 물구르는 소리가

   어디선가 나고

   먼 들녘 펼쳐지다가 양쪽 능선에서

   6.25 전쟁이 나던 여름이 버티고 이;ㅆ다

   그 때 겪은 일들이 한숨 끝에 매달려도

   편안함은

   내 가슴에 진 그늘까지 걷는다

   그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노는

   길목에서

   이렇게 당신 곁에 있는데

   그냥 있는데

   왜 자꾸만 언덕으로 오르는가

                              ―「모란공원 묘지에서」전문


 「삼팔선三八線의 봄」, 「지난 봄 이야기」, 「 식민지植民地」, 「예성강禮成江의 민들레」, 「여행기旅行記」 등 함동선 시인의 시편들은 고향과 육친을 이별한 6.25 전쟁의 상흔이 진하게 배어 있다. 그 민족적인 비극의 그늘이 시인의 일상의식에서 항상 살아나고 그것이 시로 표현되고 있다. 시인은 역사적인 사건을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환원하여 서정의 옷을 입히고 있다. 그 정서 속에는 헤어진 육친,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희망이 주류를 이루고 그것이 시의 근원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현실을 타개하려는 강한 의지나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함동선 시인의 시편들은 현실의 상황을 담고 있으면서도 현실참여의 시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이 어쩌면 더 친근하게 독자들을 함동선 시인의 시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시에서 어떤 목적의식이 지나치게 드러나면 그것으로 인해서 시의 본래적 기능이 그만큼 위축되기 때문이다. 「내 이마에는」에서는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내 이마>의 <달구지 길>,<쇠바퀴 밑에 각빠각 자갈 깨는/소리> 등 감각적인 이미지로 되살려내고 있다. 이러한 언어의 감각이 완만하고 유연한 시상을 인상적인 그림으로 만들고 있다. 「모란공원묘지에서」도 그리움의 정서가<속긁어낸 박처럼 가벼운 장모님 관>, <풀향기 뭉클한 돌돌돌 물구르는 소리>, <내 가슴에 진 그늘> 등 감각적인 이미지로 살아 있어서 시의 맛을 내고 있다. 그리고 장모님 관이 소꿉놀이 하던 질경이 언덕을 오르는 장면과 6.25 전쟁이 나던 여름이 버티고 있는 양쪽 능선의 장면을 대비하여 즐거움과 고난의 삶을 살아온 한 생애를 함축한 시각적인 영상을 ㄸ올리게 한다. 영화의 몽타쥬 같은 이러한 기법은 느슨하고 감상적인 시상을 응축시키는 언어 표현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어릴 적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저수지貯水池 속의 물같이 담겨 있는 함동선 시인의 시편들의 정서는 거의 과거 지향적이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분단 이전의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가게 한다. 그곳에 우리 민족의 따뜻한 고향의 원형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시문학』, 200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