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부부화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cassia 2006. 6. 11. 19:00
부부화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Kahlo & Rivera


파란만장한 일화를 남긴 멕시코의 전설적 화가 부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대형 벽화 작품을 통해 국가와 민족을 노래했던 리베라와, 70년대 들어 페미니즘 작가로 그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된 칼로. 두 사람의 숙명적 인간 관계와 예술적 영향 관계를 소개한다.
(1998년. 월간미술. )
 

20세기 미술사의 전설적

화가 부부인 프리다 칼로(Magdalena Carmen Frida Kahlo, 1907~54)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의 전시회가 마이욜 미술관에서 열렸다.

이 전시회는 올해 초(1. 24~6. 1) 스위스 마티니에서 지아나다 재단 설립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순회전의 하나. 이 두 사람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리베라가 대형 벽화 작품을 통해서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주제를 다루었다면,

칼로는 작은 규모의 작품을 통해 개인적이고 보편적인 여성의 고통을 표현해 내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작품 양식이나 경향은 매우 다르다.

그러나 멕시코 미술의 전통인 아즈텍과 마야 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둘의 예술 세계는 서로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멕시코 벽화 운동의 거장인 리베라, 그리고 비록 실제 활동 당시에는

그리 큰 영향력이 없었으나 70년대 이후 매우 중요한 페미니스트 작가로 부각되고 있는

칼로에 대한 미술사적인 중요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들의 조국인 멕시코나 미국을 제외한 유럽 등지에서는

그들의 존재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회는 유럽인들에게는

아직은 생소한 이 두 화가의 독특한 작품 세계와 아울러 이들의 숙명적인 관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전시명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전시회는 전반적으로 칼로의 생애와 작품 세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리베라와의 관계를 그의 작품과 함께 살펴 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작품들을 서로 섞지 않고 전시 공간을 따로 마련해

독립적으로 분류, 전시했다. 또 그들이 쓴 편지나 그들에 대한 신문기사 및

사진 기록 등도 하나의 독립된 방에 따로 전시함으로써 일반 관람객들에게

그들에 대한 소개를 겸하고 있다.


페미니즘 작가로 새롭게 부각된 칼로

칼로는 생전에는 물론이고, 1954년 47세로 사망한 이후에도

한 유명 화가의 아내로서만 기억될 뿐 정작 미술계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나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대두되면서 그의 존재는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고,

1984년 멕시코 정부는 그의 작품을 국보로 분류하기에 이르른다.

생전에 칼로는 파리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져 실제로 유럽에서는

남편 리베라보다는 비교적 더 잘 알려져 있다.

특히 1939년 르누와 콜 갤러리에서 열린 <멕시코전>에 18점의 작품을 출품,

피카소·칸딘스키·뒤샹 등의 찬사를 받기도 한다. 이는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초현실주의적 요소가 매우 뛰어난 경지임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전시회는 초현실주의 운동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인 앙드레 브르통이 1938년

멕시코를 방문, 칼로의 작품 속에 강한 초현실주의적 성향을 발견하게 되어

이루어진 전시회였다. 결국 프랑스에서 칼로는 초현실주의 화가로 인정을 받았으나

그 자신은 막상 그것에 대해 시종 거부하는 자세를 취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작품 세계가 유럽의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멕시코적인 것에 뿌리를 둔 것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강하게 지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에 대한 관심은 단지 미술 문제, 즉 작품 세계에만 놓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엘자 쉬와파렐리 같은 디자이너는 ‘마담 리베라’라는 전통 멕시코 의상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었으며, 패션 잡지 《보그》는 그의 반지 낀 손을 표지로 장식하기도

했다. 이는 그의 삶이 매우 연극적이었으며, 또 항상 여사제처럼 전통 의상과

액서서리를 착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관습은 요란스러울 정도로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면모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에게는 20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의 한 우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독일인이었던 칼로의 아버지는 그에게 ‘프리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독일어로 프리다는 평화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1907년 멕시코 시티의 교외

코요아칸에서 태어나 1954년 사망하기까지 그는 단 한번도 평화롭게 산 적이 없다.

그가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는 자기 집에서 멕시코 혁명 시기(1910~21)의

농민 지도자 자파의 부상당한 부하들을 보살펴 주기도 하는데,

그 영향으로 칼로는 멕시코 청년공산당에 가입하여 죽을 때까지 골수 스탈린자였다.

일곱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절게 되었고,

1925년 18세 때 그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한다.

이 때 길다란 철봉이 그의 배를 관통하고, 척추·오른쪽 다리·자궁을 크게 다쳤다.

1년 동안의 깁스 이후 평생 동안 30여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는 등 이 사고는

그의 일상적인 삶뿐만 아니라 예술 세계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 사고로 인하여 멕시코의 국립 예비학교에서 준비하고 있었던 의사로서의 꿈을

포기하고, 이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그 사고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그의 작품 세계의 주요 주제가 된다.

칼로의 작품에는 자화상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사고 후 병실에 누워 있을 때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한 그림을 그렸으며,

퇴원해서는 침대 밑에 거울을 달아 놓고 거기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사고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고자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

심리 상태를 관찰하고 그것을 표현했다.

 “나는 나를 그린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잘 아는 내 그림의 주제는 바로 나이다.”

이 사고가 그에게 준 가장 심각한 정신적 고통은 세 번에 걸친 유산을 통해 나타난다.

그의 남편 리베라는 이미 전처에게서 네 명의 아이들을 두었지만,

결혼 전부터 리베라의 아이를 반드시 갖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던 칼로에게 있어서

남편의 아이를 낳아줄 수 없다는 사실은 하나의 고통스러운 재앙으로 받아들여졌다.

<헨리포드 병원>(1932), <프리다와 유산> (1932) 등과 같은 작품들이 바로 이러한

예이다. 이 두 작품에서 보이는 칼로의 모습은 유산의 고통이 단지 유산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가 없다는 것에 대한 아픔을 극명하게 보여주는데,

작품에서 그것은 탯줄과 줄 혹은 뿌리 같은 오브제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이처럼 자화상이 고통 속에 있는 자신의 표현이라 할지라도

작품 속의 그가 늘 우수에 찬 모습은 아니다.

<다친 사슴> 속의 칼로의 모습은 비록 여러 개의 화살 때문에 피를 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선은 매우 투명하고 아주 강한 빛을 발하고 있다.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오히려 예술로 승화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의 자서전 작가인 헤이든 헤레라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는 비참할수록 주름과 리본으로 치장했다.

그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숭배하러올 수 있도록 그는 우상으로 변형되었다.

칼로의 작품들은 일종의 종교적인 기능을 가진다.”

칼로는 현재 멕시코나 미국에서는 가장 숭앙받는 페미니스트들의 우상이며

멕시코를 대표하는 위대한 화가이다. 1989년 5월 그의 자화상 중 하나는 1백50만 달러에

뉴욕에서 팔렸고, 1995년에는 3백50만 달러에 팔려 가장 비싼 라틴 아메리카 미술품이라

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1980년대 초반, 가수 마돈나는 <나의 출생> (1932)과 다른

자화상 두 작품을 산 것에 대해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정도였다.


  <뿌리 혹은 거친 땅> 금속에 유채 30.5×49.9cm 1943

 

이 그림은,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중남미 예술작품 가운데 가장 높은 가격인 56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금속에 유화로 그려진 이 작품은 화산으로 뒤덮인 멕시코 대지를 배경으로 식물의 뿌리와

프리다 칼로의 핏줄이 얽혀있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소더비의 남미 예술 책임자는 이 작품이 아기가 없는 프리다가 남편 디에고를 자연의

품 처럼 평생 아끼고 사랑하겠다는 의지를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YTN : TV뉴스 2006.5.26 03:54 -



 <다친 사슴> 나무에 유채 22.4×30cm 1946



<멕시코와 미국의 전쟁 앞에 선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30×34cm 1932



 프리다 칼로 <프리다와 유산 혹은 유산>
 종이에 리도그래피 31.7×23.5cm 1932


멕시코 벽화 운동의 거장 리베라

디에고 리베라는 일찍이 11살 때부터 멕시코 미술학교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으며,

칼로가 태어나던 해인 1907년 장학금을 받고 유럽으로 건너가 영국·스페인·네덜란드를

거쳐 1911년부터 파리의 몽파르나스에서 살기 시작한다. 이 곳에서 그는 1912년부터

시작되는 입체주의를 직접 체험하게 된다. 그러나 비록 브라크·피카소·피카비아 등과

같은 화가들과 광범위하게 교류하지만, 그들의 작품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자신의 타고난 색채 감각으로 그것을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흡수한다. 입체주의자들이

추구했던 이른바 형상을 재구성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수긍했으나, 비록 일부이지만

무채색 사용에 대해서는 전혀 찬동하지 않았다.

멕시코 혁명 이후 새로운 정부는 문화적인 면에 관심을 돌리게 된다. 그리하여 멕시코

토착 문화에 대해 새롭게 인식을 하며, 따라서 그 동안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당했던

인디언들이 멕시코 사회 및 문화 속에 부각하게 된다. 그러한 운동의 한 방법으로

멕시코 벽화 운동이 시작되는데, 외국에서 체류하고 있던 자국 화가들을 불러들여 공공

건물에 멕시코의 역사를 내용으로 벽화를 제작하게 한다. 리베라 역시 이 시기에

귀국하게 되는데, 1921년 귀국하기 직전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서 고대 프레스코화 및

지오토와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에 매료된다. 그리고 바로 그 은은한 색채 효과를

내는 프레스코 기법을 통해 벽화를 제작하게 된다.

리베라 작품의 독창성은 이와 같은 대규모 벽화 작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는 벽화 작품을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 세계의 전모를

완전히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이번에 전시된 그의 이젤화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벽화를 통해서는 멕시코 민중의 역사에 대한 정체성을 부여하려 노력한 반면,

이젤화를 통해서는 일상적인 인디언의 모습과 멕시코 사교계 인물들의 초상화 등을

제작한다. 귀국 이후에 그가 그린 벽화는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으므로 한 장소에서

하나의 작품만을 볼 수 있는 반면,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여러 작품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비록 이젤화에 국한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모되었으며 내면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를 볼 수 있다.

멕시코 대중 문화에 광범위하게 닻을 내린 그의 미술은 대형 작품들이 대부분이고,

이번에 전시된 이젤화들은 벽화들보다는 비록 덜 야심적이지만 그의 조형적인

세계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회에 보인 작품들의 대체적인

특징으로는 멕시코인들의 생활 주제와 매우 화려한 색채의 사실주의적 경향을 들 수 있다.



 <모스크바의 노동절 행진> 캔버스에 유채 133×107cm 1956



 디에고 리베라 <밤 풍경> 캔버스에 유채 111×91cm 1947



 <브라티슬라바의 다뉴브강> 캔버스에 유채와 템페라 90×116cm 1956



 <콘차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62.3×48.3cm 1927



  <캘리포니아 알레고리> 프레스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퍼시픽 증권사 벽화. 


 * 출처 : 월간미술. 한성희 미술사

'시와 憧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은  (0) 2006.06.15
하루를 시작할 때에는  (0) 2006.06.12
국군은 죽어서,.. / BM 戰友여  (0) 2006.06.11
그대 힘겨워 마세요  (0) 2006.06.08
유월 / 김용택  (0) 200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