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누리

아빠랑 둘이서 / 마를리스 바르델리

cassia 2005. 5. 6. 03:36

 

마를리스 바르델리의 동화책 <아빠랑 둘이서>

 

아빠랑 둘이서만 사는 아이
강지이(thecure8) 기자

▲ <아빠랑 둘이서>의 겉그림
ⓒ2005 보물창고
여주인공 메를레의 이름은 프랑스어로 ‘지빠귀’라는 뜻이다. 지빠귀처럼 예쁘게 노래하는 아이가 되라고 돌아가신 엄마가 지어 주셨다. 하지만 메를레가 부르는 노래는 음정과 박자가 하나도 안 맞는 엉터리 노래이다. 그래서 메를레는 이름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아이이다. 책의 시작은 메를레와 그 애 아빠가 사는 모습을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메를레와 그 애의 아빠는 자동차집에 살았습니다. 그 안은 그다지 넓지 않았지만 그래도 침실, 거실, 작은 부엌이 있었습니다. 침실에는 접었다 폈다 하는 침대가 둘 있었지요. 하나는 메를레 것, 또 하나는 아빠 것. (중략)

아빠 침대 위에는 빨간 아마릴리스 한 송이와 하얀 아마릴리스 한 송이가 그려진 그림, 메를레 침대 위에는 엄마 그림. 엄마는 함께 살지 않았습니다. 메를레는 엄마에 대해 물어 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했지요.

‘우리 아빠는 화가고요, 우리 엄마는 이제 천사예요.’

그러면서 메를레는 가끔 엄마가 진짜 천사가 된 건지 미심쩍어했습니다. 엄마가 종종 울고 푸념을 하던 일이 생각났거든요. 그런 다음 엄마는 병이 났고, 세상을 떠났답니다. 하지만 아빠는 엄마가 살아 있는 동안 울고 푸념해야 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천사가 됐다고 생각했지요. 메를레는 아빠가 그냥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 뒀고, 자기도 슬플 때면 그렇게 믿었습니다.”


이 조그만 자동차 집에서 아빠와 생활하는 메들레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이다. ‘노래 잘 부르는 새’라는 이름과는 달리 노래는 잘 못하지만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 비가 오면 메를레는 시를 더 잘 쓸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글씨를 쓸 수 없기에 시를 머릿속에 넣어 둔다.

화가인 아빠는 길거리 예술가이다. 메를레와 자신이 그린 수채화를 길바닥에 늘어 놓고 판다. 잘 팔리지는 않지만 가끔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가는 사람들이 있다. 아빠는 큰 전시장에서 자신의 그림이 전시되는 꿈을 꾸지만, 그림은 대도시에 있는 화랑이 아니라 시장 거리 바닥에 놓여 있다. 게다가 바람에 날아가지 말라고 돌멩이까지 올려 놓아야 하니 슬프기만 하다.

슬픔에 빠진 아빠를 위로하면서 메를레와 아빠는 뭔가 새로운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제안한 일은 바로 메를레를 학교에 보내는 것. 이 둘은 학교에 가면 메를레가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훌러루프라는 조그만 동네에 땅을 빌려 자동차 집을 세우기만 하면 훌륭한 가옥이 된다.

이 작은 동네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시장님은 아빠에게 작은 전시회를 열어주고, 부인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하거나 동네 사람의 집을 페인트칠 하는 등의 일거리를 준다. 메를레는 학교에서 엉뚱한 행동을 많이 하여 핀잔을 듣지만 아이들과 함께 적응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 책 속의 삽화
ⓒ2005 보물창고
몇몇 아이들은 메를레의 양말에 구멍이 났으며 머리 모양이 예쁘지 않다고 놀리지만 메를레는 당당하기만 하다. 당돌한 메를레는 나뭇가지를 꺾는 아이에게 ‘너는 그것이 하나도 쓸모 없으면서 괜히 꺾는 거야!’라고 충고를 던진다. 부끄러워진 친구는 그것으로 인형을 깎아 메를레에게 선물한다.

알파벳 ‘A’ 쓰기를 연습하는 시간에 상상력이 풍부한 메를레는 그걸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선생님은 ‘지금은 글짓기 시간이 아니라 쓰기 연습 시간’이라고 야단치지만 아이는 그저 자신이 만든 얘기에 즐겁기만 하다.

“옛날에 어떤 아저씨랑 아주머니가 낡은 집에 살았어요. 비가 오면 지붕이 새어 빗물이 떨어지고, 폭풍이 불면 집 안으로 바람이 쏴아 불어 왔어요.
‘겨울이 오기 전에 지붕을 고쳐야 해요.’
아주머니가 말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돈이 없지 않소.’
아저씨가 덜덜 떨며 말했어요.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도 말이에요. 아주머니가 창 밖을 내다보더니 신이 나서 외쳤어요.
‘저길 봐요! A가 지나가고 있어요. 저것보다 더 좋은 지붕이 어디 있겠어요? 나가서 우리를 도와 줄 수 있는지 물어 봐요.’
A는 흔쾌히 승낙하고 지붕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어요.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고, 바람 한 줄기 새어 들어오지 않게요.”

메를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I’는 깃대가, ‘U’는 빗물통이, ‘O’는 타이어가 될 수 있다고 외친다. 아이들의 순수함과 엉뚱함이 가득 묻어나는 동화책이 바로 이 <아빠와 둘이서>가 아닐까 싶다.

마을에서 행복을 가득 얻은 아빠와 아이는 아무도 깨지 않은 이른 아침 자동차 집을 타고 훌러루프를 떠난다. 떠나면서 메를레는 마을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마치 아이들이 교문에 나와 ‘잘 가, 메를레’ 라고 외치며 해젤바르트 할아버지가 커다란 손수건을 흔들 것만 같은 마음. 하지만 마을 풍경에는 아무도 없다.

‘집과 나무들이 점점 작아졌습니다. 그 집 안은 보이지 않지만, 메를레가 알았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는 읽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여운을 준다. 이 책은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적합한 내용과 소박하게 그린 그림으로 짜여 있다.

어린이 날 좋은 선물이 뭐 없나 걱정하는 어른들이 서점에서 한 번 읽어 보고 선물하면 좋을 듯하다.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한 어린이의 이야기가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감동을 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엄마가 없지만 밝고 건강한 메를레의 모습에서 어른 또한 부녀 가정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는 가르침을 얻는다. / 오마이뉴스